좌표를 잃었다. 8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뮤지컬 ‘태양왕’은 화려한 볼거리를 갖췄지만 평면적인 인물들과 긴장감 떨어지는 이야기 전개로 힘이 빠진 채 표류하고 말았다.
‘태양왕’은 루이14세의 일대기를 그린 프랑스 뮤지컬. 국내 초연작으로 한국에서 상당 부분 재창작됐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와 EMK뮤지컬컴퍼니가 손잡고 올린 작품. EMK뮤지컬컴퍼니는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 ‘황태자 루돌프’ 등 오스트리아 뮤지컬을 들여와 연속으로 흥행 홈런을 날린 제작사다.
루이14세 역은 신성록과 안재욱이 함께 맡았으며 루이14세의 연인 프랑소와즈 역은 김소현 윤공주가 발탁됐다. 프리뷰 첫날에는 안재욱과 윤공주가 출연했다.
주인공 루이14세가 권력을 장악한 마자랭 추기경에 맞서 절대 왕정을 구축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지만 ‘태양왕’에서는 평이한 이야기로 흘러버렸다. 루이14세는 추기경의 사주로 왕을 유혹하는 몽테스팡 부인이 다가오자마자 “위로가 되는군”이라며 곧바로 넘어간다. 국정을 쥐락펴락했던 추기경은 루이14세가 그의 악행을 읊조리며 자결할 것을 명령하자 순순히 독약을 마신다. 왕은 프랑소와즈가 혼잣말로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단박에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고뇌 속에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조금씩 권력을 확보해 나가는 왕은 없었다. 쇼가 강한 원작을 각색해 이야기를 부각시켰지만 집중력 있게 극을 끌고 나가기에는 힘이 부쳤다.
지난해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은 안재욱은 수술 후 처음 무대에 선 탓인지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정치를 멀리하고 유희를 즐기는 필립 역(루이14세의 동생)을 맡은 김승대는 “와우”를 연발하며 코믹 연기를 선보였지만 객석에서 웃음은 별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여성 조연들은 존재감이 있었다. 우현주(안느 대비 역)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이소정(몽테스팡 부인 역)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빛냈다.
프랑스 뮤지컬의 강점인 음악은 돋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왕이 되리라’ ‘모두 일어나’ 등을 흥얼거리며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멜로디가 귀에 꽂혔다. 봉 위 혹은 공중에서 춤추는 장면이 많이 등장해 볼거리가 풍성했다. 큰 액자 틀 뒤에서 흰 옷을 입은 네 명의 무용수가 공중에서 춤추는 장면은 그림 속 밤하늘에서 천사들이 춤추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4m가 넘는 루이14세의 푸른 망토를 비롯해 360여 벌에 이르는 의상도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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