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레이놀즈 감독의 영화 ‘어글리’에 나오는 연쇄살인범 사이먼도 난독증에 걸려있다. 어렸을 때 사이먼은 글도 못읽는 아이라는 놀림을 받는다. 사이먼이 어른이 되어 취직한 회사의 이름은 ‘네랙(Nerak)’. 그런데 잠시후, 정신병원에 갇힌 그를 면접한 여의사의 이름은 카렌(Karen)이다. 카렌의 스펠링을 거꾸로 읽어보자. 바로 사이먼이 다니는 회사가 된다. 과연 이것이 감독의 단순한 장난일까?
사실 ‘어글리’의 주인공 사이먼은 세상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는 현재에 살면서도 과거 어머니에게 학대당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있고 거울속의 얼굴도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뀐 채로 보게 된다.
거꾸로 읽어내야 영화가 보이는 이러한 난독증의 독해방법은 최근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샤이닝’은 텅빈 미로같은 호텔에서 겨울을 나게 된 세식구 중 작가였던 아버지가 서서히 미치면서 가족들을 위협하는 섬뜩한 영화다.
악마의 힘에 갇힌 아버지가 등장할 때 호텔방의 흰 문에는 ‘레드럼’이라는 붉은 글자가 나타난다. 레드럼(Redrum). 바로 읽으면 붉은 빛깔의 럼주가 연상되지만 거꾸로 읽으면 무엇이 되는가? 바로 살인(Murder)이란 뜻이다. 관객들은 처음엔 레드럼이 무엇인가 하다가 어느 결에 이것이 살인이라는 뜻임을 알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도 있지만, 이렇게 세상을 거꾸로 읽어내는 난독증은 때론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의 숨겨진 원리를 읽어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전문가)kss196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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