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심리학]심영섭/ 투사란?

  • 입력 1999년 5월 2일 20시 09분


한 흑인 남자가 법정에 서 있다. 아래층은 온통 백인들로 가득하고 위층에서는 흑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본다.

백인여자를 강간했다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 흑인 남자는 틀림없이 죽게 된다. 그러나 “남자가 오른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는 여자의 주장과 달리 변호사가 갑자기 컵을 던지자 남자는 이를 왼손으로 받아낸다. 남자는 실은 오른손을 잘 쓰지 못했던 것이다.

로버트 멀리건 감독의 영화 ‘앵무새 죽이기’. 60년대 미국 남부의 소읍을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대체 왜 이 백인 여자는 자신의 집에서 막일을 하던 흑인 남자가 자기를 강간했다고 고소한 것일까?

스스로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을 투사(投射)라고 한다. 즉 공던지기를 하듯 자신의 욕망을 상대방에게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백인 여자는 흑인 남자에게 성적 욕망을 느꼈음직하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여자는 오히려 남자가 자신에게 성적 욕망을 느낀 것으로 지각하게 된다.

투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심한 적대감을 느낀다. 자신의 욕망이 금기시될수록 적대감은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일전에 심한 의처증 증세를 보이는 남자 환자의 심리검사를 한 적이 있다. 검사 결과 환자는 누군가를 안으려는 포즈의 긴머리 여자를 그리거나 테스트용 잉크 반점을 ‘다정하게 걷는 연인’ ‘코를 맞대는 곰’으로 해석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경우 환자가 부인에게 의심과 분노를 갖는 것은 다른 여성으로부터 친밀감을 얻고 싶은 욕망을 부인에게 투사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영화 ‘우나기’에서 야마시타라는 남자는 바로 이 의처증때문에 부인을 살해한다. 출소후 남자는 뱀장어를 키우면서 부인에 대한 의심이 사실은 자신의 환상이었음을 점점 깨닫게 된다. 투사란 이렇듯 강력한 심리적 기제이다. 마음 역시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 여러가지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가 투사이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전문가) kss196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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