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심리학]심영섭/물고기

  • 입력 1999년 5월 16일 20시 04분


영화 ‘쿠오바디스’에 보면 자신이 기독교도임을 밝히는 증표로 신자들이 땅바닥에 물고기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그리스어로 물고기의 철자가 예수 그리스도, 신의 아들, 구세주라는 말의 머릿글자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에 나온 영화에서 물고기는 종교적인 표상이라기 보다 억압당하고 있는 여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중국판 ‘그린 카드’라고 볼 수 있는 영화 ‘소녀 소어(小魚)’의 주인공 이름은 말 그대로 작은 물고기 소어다. 소어는 불법 이민자로 미국에 취업중인데, 미국에 온 이유는 순전히 애인인 강위가 미국 여자와 연애하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녀의 애인 강위는 수산물 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살아 숨쉬는 물고기를 반토막 내는 강위. 그것은 사실 소어를 옥죄고 있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를 시각화한 것이다.

아마 물고기가 억압당하는 여성으로 영화에서 상징되는 이유는 바다라는 이미지 자체가 거대한 자궁이나 무의식으로 돌아가는 근원적인 회귀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 물고기가 지니는 수동적인 이미지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겉으로는 매우 용감하고 강인해 보이는 ‘쉬리’의 여주인공 이방희도 슬픈 운명을 지니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북을 오가며 맑은 물에서만 살아남는다는 토종어 쉬리는 결국 한반도라는 작은 연못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사살당하는 이방희의 운명을 축약한 것이었다.

남북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되는 그녀는 연약하지만 내면이 깊은 외유내강한 여인이었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수족관을 경영한다는 것도 물고기 이미지와 결합된 암시적인 설정. 그러므로 ‘쉬리’의 가장 멋진 장면중의 하나인 수족관이 부수어지는 장면도 사실 그녀의 불길한 운명을 예감케하는 복선인 셈이다.

그러나 다른 상징들과 달리 물고기는 나라별로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물고기를 부나 재생의 상징으로 여긴다.

심영섭(영화평론가·임상심리전문가)kss1966@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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