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 칸 영화제 상영작 공식 발표

  • 입력 2000년 4월 20일 11시 16분


개막작 '바텔'
개막작 '바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 칸 국제영화제는 어떤 영화들을 선택했을까? 18일 오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제5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리스트는 칸이 주류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작업해 온 감독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최후의 사회주의자 감독’으로 남아 끈질기게 자본주의를 공격해 온 켄 로치, 기존 영화들에 죽음을 선고한 ‘도그마 95’ 선언의 라스 폰 트리에, 프랑스의 은둔자 올리비에 아싸이야, 대만의 환부를 드러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감독 에드워드 양, 짓궂으면서도 신랄한 조엘 코엔 등이 그들이다. 타협하지 않는 시선을 고집해 온 이 경쟁부문의 감독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은 이란에서 온 사미라 마흐말바프. 국내에서는 <가베>로 알려진 이란의 반체제 감독 모센 마흐말바프의 딸인 사미라는 18세였던 98년, 11년 동안 집안에 갇혀 있다 밖으로 나갈 기회를 잡은 두 소녀의 이야기 <사과>로 데뷔했다. 쿠르드족 반군과 교류하는 이란 교사를 다룬 두번째 작품 <검은 그림>으로 칸을 찾은 20세의 사미라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사상 최연소 감독이기도 하다.

이번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의 또 다른 특징은 아시아 영화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현재 출품이 확정된 19편의 영화 중 아시아 영화는 무려 7편에 달한다.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한 왕가위의 <인 더 무드 포 러브>(가제) 외에도 임권택의 <춘향뎐>,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하나> 등 동아시아권 작품들과 이란 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검은 그림>이 나란히 경쟁 부문에 올라 있다. 특히 <고하토>는 대담하고 노골적인 영화 <열정의 제국>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오시마 나기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완성한 작품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 영화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경쟁부문의 <춘향뎐>을 비롯 모두 네 작품이 본선에 진출했다.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한 <박하사탕>은 감독 주간에 선정되었으며, <해피엔드>와 <오! 수정>은 각각 비평가 주간과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올랐다.

그러나 할리우드 주류 영화들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 폐막작 모두 할리우드를 비켜 갔다. 오는 5월 10일 영화제의 시작을 열 작품은 프랑스 영화인 롤랑 조페의 시대극 <바텔>이며 21일에 상영될 폐막작은 집행위원장 질 자콥이 칭송하는 캐나다 감독 데니스 아칸드의 <스타덤>이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 킴 베이싱어와 벵상 페레가 출연한 휴 허드슨의 <나는 아프리카를 꿈꾸었다>가 장편 비경쟁 부문에 올랐을 뿐이다. 칸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할리우드를 배척하는 것은 칸 영화제가 최근 몇 년 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시사장이 되어 버렸다는 비판을 의식한 까닭인 듯하다. 집행위원장 질 자콥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칸을 시험 무대로 삼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제가 축제의 성격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재능있지만 지명도가 높지 않은 감독들의 열세를 보강하는 것은 스타 감독과 배우들로 채워진 심사위원단이다. <잔다르크>의 감독 뤽 베송이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양들의 침묵>을 감독한 조나단 드미,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비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비르지니 르도엔 등이 심사위원으로 함께 한다. 이밖에도 조지 클루니, 줄리엣 비노쉬, 우마 서먼, 페넬로페 크루즈, 팀 로빈스, 킴 베이싱어, 제라르 드 파르디유, 카트린 드뇌브 등이 칸을 방문해 이 따뜻한 휴양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예정이다.

김현정(FILM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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