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네 기사' 중 세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유일한 '기사'로 남은 이치가와 곤. 그가 친구 구라사와 아키라와 기노시타 게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를 추모하기 위해 잊혀진 영화를 되살렸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번 달 일본에서 개봉한 <도라 헤이타>가 그것이다.
"우리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자부심에 찬 이치가와의 말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도라 헤이타>는 수십 년 전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추억하게 하는 영화다. 은빛을 품은 일본도가 움직일 때마다 꽃잎 같은 기모노 옷자락 위에 빛과 그늘이 교차한다.
냉혹한 전투보다 대낮에 꾸는 백일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치가와는 친구 구로사와의 영화들이 가졌던 사무라이의 혼(魂)을 잊지 않는다. 검과 한 몸이 되어 바람처럼 소리없이 햇빛처럼 눈부시게 움직이는 무사 도라 헤이타는 오만하지만, 자신의 검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안다.
부패에 맞서기 위해 하층민으로 위장한 채 타락한 도시에 스며드는 도라 헤이타. 그 위장도 깨끗한, 단 한 번의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 사무라이의 길을 더럽히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치가와 곤은 하프의 선율 속에 광기로 얼룩진 전쟁과 황폐한 죽음의 이미지를 심었던 <버마의 하프>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러나 그가 90년대에 만든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84세의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있게 될 날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국의 '가디언' 지는 "<도라 헤이타>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며 젊은 감각을 갖춘 영화"라고 평했다. 구로사와의 영화가 남긴 유산과 함께 <세븐>
'네 기사의 모임'을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는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등으로 서구에 가장 잘 알려진 일본 감독이다.
그보다는 지명도가 낮지만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전쟁이 찢어 놓은 아이들의 삶을 살피는 영화 <스물 네 개의 눈동자>로 유명하며, 고바야시 마사키는 위선적인 일본 사회를 비판한 <하라키리>의 감독이다.
우정으로 만났던 '네 기사'들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헤어진 까닭은 "예술에 관한 견해의 차이" 때문이었다.
김현정(parady@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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