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한국 공포영화 부활하나…공포영화 제작 붐

  • 입력 2000년 6월 5일 11시 23분


어둠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암흑을 응시하는 사람들은 심연처럼 끝없는 그곳에서 은빛 칼날을 덮어 오는 핏물 혹은 사라진 줄 알았던 예전 악몽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은 이처럼 늪지와도 같다. 그 자체로 실체를 가진 어둠 속에서는 그림자도 살아나 덮쳐 올 수 있다.

그러나 공포는 동시에 매혹이기도 하다. 몸서리치면서도 눈길을 돌릴 수 없도록 만든다. 미지의 존재가 던지는 이 두려움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도록 중독되어 버릴 것이다.

여름을 기다리는 한국의 공포영화 두 편은 비슷한 공식을 되풀이하면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이 신기한 장르를 안정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7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위>와 <해변으로 가다>는 모두 ‘정통 호러’를 표방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태어나 아직까지도 열광적인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호러의 관습에 기대려는 것이다. 젊고 신선한 육체를 생명 잃은 고기 덩어리로 난도질하는 이 영화들은 이미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안전한 선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동안 맥이 끊겼던 공포영화의 부활을 설명하기 어렵다.

<스크림>의 대중적인 성공은 이 영화가 한국에 들어온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왜 하필 지금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두 편의 영화는 과거 한국의 공포영화를 지배했던 한(恨)의 정서 대신 자극적인 감각으로 돌아왔다.

그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영화들에 뒤따르는 공포영화들이 너무나 많다. <하피> <공포택시> <찍히면 죽는다> 등이 모두 스스로를 호러로 규정하는 영화들이다.

<가위>의 제작자 김익상 씨는 이러한 현상을 ‘자극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IMF 한파가 지나가고 대중 문화 전반이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관객은 새로운 자극을 간절하게 원한다는 것이다.

놀라움을 즐기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쫓고 쫓기는 연쇄살인극 <해변으로 가다>와 스크린을 피로 물들이려는 <가위>는 적절한 자극의 기제가 될 수 있다. 김익상 씨는 지금의 관객에겐 눈물을 요구하는 멜러보다 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보다 가슴을 찌르는 공포가 더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잔혹한 칼부림이 이어지는 장르의 특성상 소수의 관객만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공포영화가 보다 넓은 지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현실과 접속하면서 사실적인 공포를 불러왔던 <여고괴담>의 관객들은 이제 대부분 성인이 되었다. 불법 비디오를 통해 확보된 팬들도 상당하다.

통신과 인터넷 상에는 전국적인 규모로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호러존’ 등 수많은 호러 영화 동호회가 존재한다. 이들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기는 하겠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조건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공포영화 붐이 <스크림>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시도는 아닌지 묻는다. 그러나 <해변으로 가다>의 김인수 감독은 <스크림>을 참고하기보다 의미의 전달에만 충실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사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은 비슷한 구조와 스토리를 따라간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관습을 되풀이 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변형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이다. 그것이 작품의 생명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 판단은 결국 관객의 몫이 될 것이다.

김현정(parady@film2.co.kr)

기사 제공: FILM2.0 www.film2.co.kr
Copyright: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