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나 케이슨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옮긴 <처음 만나는 자유>는 어두운 방 안에 갇힌 소녀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처럼 어떤 것도 비치지 않는 눈동자. 그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던 것일까. 끝없이 추락하는 어둠의 흔적을 남겨 놓으며 영화는 상처 입은 소녀들의 기묘한 공동체로 미끄러지듯 빠져 들어간다.
60년대 후반. 17세의 소녀 수잔나 케이슨(위노나 라이더)은 아스피린 한 통을 보드카와 함께 복용한 후 응급실에 실려 간다. 그녀는 자살 미수로 판정받고 '클레이 무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 곳에서 수잔나는 스스로 얼굴에 불을 붙인 폴리와 아빠에게 매달리는 데이지,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에 빠져 있는 조지나를 만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리사(안젤리나 졸리)가 있다. 끊임없이 도망치면서도 끝내는 병원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리사. 수잔나는 강하고 거침없고 확신에 찬 리사에게 중독되어 간다.
여자들만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흔히 그렇듯 <처음 만나는 자유>도 한동안 따스하고 정감 있는 시선으로 정신병원의 소녀들을 바라 본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그들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한밤에 볼링 게임을 할 때나 외부 세계와 충돌할 때 소녀들은 은밀한 공범이 되어 환성을 내지른다. 항상 숨으려고만 하는 그들을 강제로라도 열어 젖히는 사람은 리사다. 리사는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서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소녀들을 순식간에 해방시키는 힘이 있다.
그 에너지는 불안하게 떨던 수잔나까지도 웃게 만든다. 사심없고 활기찬 정신병원의 공동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 각자 비밀을 숨기고 있는 젊은 여배우들의 연기는 이 폐쇄적인 공간에도 작은 빛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수잔나와 리사가 달아나면서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영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한다. 리사는 잔인하고 충동적인 정신분열의 징후를 드러내며 수잔나는 겁에 질려 병원에 돌아온다. 그리고 수잔나의 반성이 시작된다.
세상은 잘못된 것 하나 없는데, 간호사 발레리가 비난하는 대로 '철없는 망나니'인 이 소녀의 불평이 고립을 자초했다는 얘기다. <처음 만나는 자유>가 광기의 의미를 묻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나 세상으로부터 오해받은 한 여성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내 책상 위의 천사>와 다른 점은 이 부분이다. "너는 다른 애들과 달라. 미치지 않았잖아"라는 발레리의 말에는 사전적인 의미 이상의 어떤 깊이도 없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 수잔나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병원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리사를 떠난다. 그토록 강렬하던 리사의 눈동자는 이제 텅 비어 있다. 수잔나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병원을 나오는 수잔나. 그러나 그녀가 세상에 순응해 버리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지, 그 의문만은 떨쳐지지 않는다.
[김현정(parady@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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