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돈도 많이 벌었다. 외화 수입과 배급사업 등을 통해서다. 외화로 벌면 한국영화에서 망하고, 우리 것이 괜찮은 날은 사들여 온 게 시원찮았다. 예를 들어 <지아이제인>으로 만만찮게 돈을 벌고는 <죽이는 이야기> 제작으로 그 돈을 왕창 까먹기도 하는 식이다.
현재 국내영화계 파워 1인자인 시네마 서비스의 강우석 대표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자신보다 영화 빚이 더 많은 사람'으로 김형준 사장을 지목한 바 있다. 김씨는 최근 '마음에도 없었던' 영화 <그림일기>를 제작해 흥행에 실패했으며 <거짓말> 배급 문제로 신도필름과 갈등을 벌여 관련업계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이래저래 지난 1년간은 김씨에게 힘든 시기였다. 뭔가 하나가 터져 줄 때였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 아닌가.
-아니다. 처음부터 서울에서만 25만 정도는 바라봤다. 오히려 배급 과정에서 UIP 등의 영화에 시달리면서 잘못하면 고전하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방 배급이 잘됐고 그만큼 그 쪽에서 관객이 잘 든다는 거다. 이건 원래부터 되는 영화였다.
-어쨌든 여러가지 의미에서 전화위복이 되는 작품이겠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겠다. 98년 말부터 지난 해 말까지 제작된 영화 가운데 강우석이 것 빼고(시네마서비스 제작투자 배급작품, 곧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텔 미 썸딩>, <주유소 습격사건> 등을 가리킴) 이 영화 저 영화 차포 떼고 나면 흥행작이 한 4편 정도 남을 거다. <약속>과 <편지>, 내가 직접 제작한 영화 <링>, 그리고 <거짓말> 등이다. 모두 흥행작들이고, 엔딩 타이틀에 내 이름이 제작으로 올라 가는 작품들이다. 이 정도면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지가 뽑는 영화계 파워 50위에도 못 들어가는 게 바로 나다. 왜 이번 영화의 흥행을 실패 끝에 성공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하게 됐나.
-원안은 공동제작자인 이동권씨가 가지고 왔다. 그제 지난 2월이다. 기획은 1년반 전에 된 것이라고 했다. 시나리오를 본 순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처음 시나리오에는 여주인공도 죽는 것으로 돼있었고 남자와 여자가 살아가는 시대차이도 30년이 났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깔끔한 작품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제작비도 큰 영화가 아니었고. 투자지원을 받으려다 아예 자체 공동제작쪽으로 돌린 것도 작품에 욕심이 나서였다. 승부를 걸만한 작품이었다.
-트렌디 드라마에다 소품치고는 크게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다.
-이 영화를 두고 자꾸 트렌디 트렌디 하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건 트렌디 드라마가 아니다. 기획상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순수 멜로영화쯤이라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한 시각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기획상품처럼 보는 이유는 유지태가 나와서인 것 같다. 하지만 유지태를 주연으로 기용할 때만 해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빅스타급은 아니었다. 그렇게 된 것은 극히 최근 얘기 아닌가?
-어쨌든 유지태 덕을 본 건 사실 아닌가.
-물론. 중고등학생 관객 몰이를 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손해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매스컴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신이 질문하는 식으로 청춘스타를 이용한 그렇고 그런 드라마 정도 아니냐는 선입견이 많았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개봉 직전, 가장 중요한 매체 홍보를 일정 정도 포기하고 간 셈이다.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 새삼 깨달은 점이 있다면?
-영화의 성공은 탄탄한 스토리가 좌우한다는 점이다. 굉장히 단순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걸 영화제작에 제대로 활용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요즘 관객들 자극적이고 특이한 거 좋아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점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특수효과라든가, 무조건 규모를 키우는데로만 치중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도 시나리오가 제대로 나와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를 가져올 수 없다. 일단 얘기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성이 제대로 돼있어야 하고. 그게 바로 영화제작의 원칙이다. 그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것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성공이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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