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 끝까지 까만 옷으로 차려 입은 차승원은 희수처럼 보이도록 애쓴 것 같았다. 강한 눈빛을 번득이며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이미 <리베라 메>에 승부수를 두고 있음이 분명했다. 가끔씩 담배연기가 그의 얼굴을 가릴 때 화염 속에 가려진 희수를 언뜻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지가 연기의 일부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소방관 역이었지만 방화범으로 바꿨다고 하던데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순간부터 방화범이 나한테 맞는다고 생각했다. 악역인데 악하게 안 보이는 게 희수의 매력이다. 악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인물이다.
-희수는 지능적인 방화범인가
-희수는 살아온 이력 탓에 본능적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지 머리를 굴려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방화범은 아니다. 희수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불을 질렀다.
-방화범 캐릭터를 어떻게 잡았나
-20편의 영화를 봤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만 도움이 됐을 뿐 캐릭터가 잘 안 잡혔다. 그래서 직접 만나자는 생각을 했다. 김정일 정신과 전문의가 희수와 비슷한 인물을 추천했다. 어렸을 때 아동학대를 당해 누나하고만 연락하고 지내는 남자였는데 나와 나이가 같았다. 오랜 시간 만나서 얘기를 나눴지만 대화가 깊은 데까지 진전돼진 않았다. 그래도 그게 도움이 많이 됐다.
-강한 마스크라 방화범 이미지에 맞겠지만 악역이 미남이면 좀 곤란할 것 같다
-분장이나 의상을 어떻게 갈 것인가 정하기 힘들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방화범을 멋지게 보여주느냐, 아니면 사실적으로 묘사 하느냐로 고민했다. 내 마스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캐릭터를 구축하는 장치는 사실적으로 가기로 했다. 될 수 있으면 의상을 "안 튀는 것, 안 붙는 것"으로 정했다.
-그래도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튀어 보일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나만 평상복을 입고 나오기 때문에 의상 선정에 고심했다. 작업복을 입는 것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나체 장면 때문에 갈등이 있었나
-교도소에서 출감할 때 몸 수색 장면이 있지만 문제될 것 없다.
-정신질환자의 발성은 평범하지 않을 텐데
-보통 정신질환자는 말이 조용하고 톤이 똑같다. 대사 톤과 속도에 유의해 연기할 생각이다.
-이제까지 영화에서는 여성이 상대역으로 있었는데 이번에는 불과 당신 뿐이다.
-그게 <리베라 메>가 맘에 드는 이유다.
-많은 소방대원과 팽팽한 긴장을 벌이기가 벅차지 않은가
-적대 관계로 설정된 배우들과 친하고 모두 좋은 연기자이기 때문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다.
-불을 내는 방화범은 불을 끄는 소방대원 보다 덜 위험할 것 같다
-다른 배우들에게 죄송하다. 얇은 옷을 입고 있어도 더운 날씬데 불 앞에서 두꺼운 소방복을 입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는 연기는 정말 고생스러울 것이다. 민수 형이 "예술은 너 혼자 다하고 고생은 우리가 한다"고 하더라.
-방화범이기 때문에 명예 소방관 위촉패는 못 받았겠다
-준다고 했는데 제작 발표회 때 안 주더라. 꼭 받고 말겠다.
-불 나는 영화라 위험한 장면이 많을 텐데
-마지막 장면이 가장 위험하다. 상우(최민수)랑 대결을 벌이는 장면인데 길이도 만만치 않고 난이도도 높아 걱정이다. 희수는 교도소, 아파트, 주유소, 병원 옥상 네 군데 불을 지른다. 마지막 병원 장면은 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연기해야 한다. 굉장히 위험하고 연기도 힘들 것 같다.
-<분노의 역류>와 <리베라 메>를 비교해 달라
-불이 나온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다. 일반 관객이 느끼기엔 <분노의 역류>나 <싸이렌>이나 <리베라 메>나 똑같다고 할 것이다. 내 생각엔 영화들이 구체적인 설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 힘들다.
-라면이나 세제 CF도 찍고 드라마엔 순진한 청년으로 나오던 데 영화에서는 악역만 맡는다
-특별히 악역을 선호해서는 아니다. 내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TV로 보여지는 이미지를 그렇게 간 건데 사실 나와 잘 맞지도 않고 한계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일체 방송 활동을 안 하려고 한다.
-<리베라 메>가 잘 돼면 영화만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텔레비전 할 때면 "텔레비전만 하겠다", 영화 할 때면 "영화만 하겠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또 영화와 텔레비전을 같이 할 때는 "병행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했다. 솔직히 말해 영화만 하고 싶지만 나도 생활인이라 영화만 고집할 수는 없다. 지금은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좋다.
-현재 촬영 진도는
-내 분량은 15% 찍었고 다른 배우들은 8.5% 쯤 진행됐다. 여름 내내 촬영할 예정이다. 매번 영화 할 때마다 "이 영화에서 안 되면 앞으로 영화 안 한다"고 했는데 이번 영화는 느낌이 다르다. "자신 있다"고는 장담 못 해도 준비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 모델인 유지태나 박재훈도 이 영화에 출연한다. 연기에 대해 조언하는 편인가
-전혀 아니다. 유지태 씨나 박재훈 씨가 모델 후배긴 해도 연기에는 다 개성이 있기 때문에 니 연기가 이렇다 저렇다 터치를 안 한다.
<한승희(lisaha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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