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을 앞두고 촬영을 맡은 경재가 괴한을 습격을 받아 손을 다치자 비동아리 멤버인 태동이 촬영을 대신한다. 촬영지는 수연의 산장. 촬영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하나씩 사라져 죽어가고 수연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현실은 공포영화처럼 변한다.
90년대 이후 헐리우드는 10대 난도질 영화를 부활시켰다. 최근 개봉해 박스 오피스를 강타한 <무서운 영화 Scary Movie>를 비롯해 90년대 이후의 헐리우드 10대 공포영화는 자기 모방과 패러디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헐리우드의 흐름에 자극받은 한국 공포영화의 흐름은 이제 막 시작이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하피>는 아쉽게도 장르 오용의 전범이 될 듯 하다.
<하피>는 10대 공포 영화 경향의 모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 이야기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시작부터 호기있게 이것이 영화임을 알리면서 끔찍해 하거나 놀라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사건과 구성은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캐릭터의 일관성도 떨어진다.
음울하고 미스터리에 쌓인 인물인 태동은 마지막에 머리를 밀고 완전히 망가진다. 수연과 예림, 현우의 삼각관계는 쓸데없이 드라마를 낭비하고 '영화 속 영화' 라는 모티브도 특징 없는 형식이 돼버린다. 공포 장르를 표방한 영화가 상영시간의 절반을 아이들의 유치한 사랑 놀음에 할애한다.
공포영화의 관습들과(무분별한 10대들에 대한 응징. 단절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차례차례 죽어간다) 익숙한 소도구(칼과 갈고리)를 빌어 왔지만 이들을 양손에 들고 영화는 어쩔 줄을 모른다.
<스크림>처럼 패러디의 몸짓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피>의 패러디는 목적을 상실한 '장난'처럼 보인다. 불쑥불쑥 끼어 드는 뜬금 없는 나레이션은 모든 상황이 '영화'임을 주지시키지만 진의를 알 수 없는 요설로 관객을 어이없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왜곡시키는 것도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가관이다. 이정현은 감정 없는 인형처럼 맥없이 입만 벙긋거리면서 그녀에게 기대한 강력한 분위기를 단숨에 날려 버린다.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조연들의 생뚱한 연기를 보는 것도 꽤나 인내심이 필요하다. 드라마와 캐릭터, 형식이 절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따로 논다. 한마디로 <하피>는 맹목적인 호러 장르의 차용으로 인해 회복 불능의 정신 분열증에 걸려버렸다.
<하피>는 동시대 10대들의 감수성에 전혀 호소력을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충실한 모방의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보여준 예리한 시대감각과 예민한 감수성에 비춰 볼 때 그것은 한없이 가볍고 허술해 말문을 막히게 한다. 내내 관객석에는 실소가 터지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영화의 막가파 분위기에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올 여름 공포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접을 필요는 없겠지만 <하피>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유일하게 <하피>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제대로 된 장르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증명한 것이다. 성공한 장르의 남용은 피를 부른다. <하피>는 이 평범한 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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