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들이 함께 일하기를 선망하는 인기 감독도 아니고, 영화가 만들어질 때마다 찬사보다 혹평을 많이 받아온 감독이기에 그의 다작(多作)은 유별나다. 한 제작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하길래 김감독과 함께 영화 만들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으니 “그건, 좀…”하고 마뜩치 않아 한다.
▼충무로 비판 불구 多作 유별나▼
최소한의 돈과 시간만 쓰는 제작방식과 왕성한 생산력에 놀라지만 선뜻 함께 하고 싶지는 않은 감독. 그게 김감독의 충무로에서의 위치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쉼없이 영화를 만드는 그는 광포한 원시성을 느끼게 할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자신의 영화와도 닮았다.
200분만에 촬영을 끝냈다 해서 주목을 받았던 퍼포먼스같은 영화 ‘실제상황’은 ‘악어’부터 ‘섬’까지 이어지는 그의 영화의 상투성에 대한 비판, 싸게 서둘러 만든다는 비판에 응전이라도 하는 듯한 영화다. 최대 장점으로 꼽히던 회화적 이미지를 스스로 버린 이 영화에서 그가 형식 실험에 상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나는 완성도와 상관없이 영화를 통해 그가 고백하는 ‘나’에 더 관심이 쏠린다. 얼마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악몽으로부터 해방되고 관용같은 게 생겼다”고 했다. ‘실제상황’에서 주인공은 내재된 분노를 반복적으로 터뜨리지만, 주인공이 증오하는 악당도 죽어 마땅한 인간이 아니라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식, 일상적 공간에 대한 관심같은 건 그의 전작들에서 볼 수 없던 묘사다.
현실이 아름답지 않은데 늘 아름다운 세상만 그리는 영화는 어쩌면 거짓말일 것이다. 김감독의 엽기적인 신체 훼손같은 잔혹 취미는 끔찍하지만, 밑바닥 인생들의 부박한 삶에 대한 그의 질긴 관심은 지지한다. 그러나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애정없이 지독한 가학과 충격으로만 점철된 영화를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늘 영화로 관객을 공격하고 시비를 걸면서도 마지막 대목에 가서는 애매한 선문답처럼 화해를 이야기하는 걸 보면, 김감독은 자기 영화 속의 ‘악’이 진악(眞惡)이 아니라 ‘생성’을 위한 위악(爲惡)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밑바닥 인생에 대한 질긴 관심 지지▼
자신의 말마따나 “전복보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의 영화에서 관념으로 창조해낸 정물같은 인간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인간, 낚시바늘을 끼우고 물에 빠진 사람을 낚싯줄을 잡아당겨 건지기보다 물에 뛰어들어 건져주기도 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 김감독은 “독초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들풀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독초가 해독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상황’ 이후의 그가 궁금해진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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