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실패자(Loser)’가 ‘병신’쯤 되는 험악한 욕일지언정 나는 인생에서든 사랑에서든 실패하고 잃어버려 상처입은 짐승처럼 웅크린 사람들, 그래서 ‘나같은 것을 누가…’하는 자괴감에 휩싸여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눈물샘이 터진다. ‘매그놀리아’에서 세상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클라우디아가 나올 때마다, ‘버팔로 66’에서 마음이 비비 꼬여 엉뚱한 데에 화풀이를 해대는 빌리를 볼 때도 그런 심정이었다.
상영중인 영화 ‘리플레이스먼트’도 그랬다. 87년에 실제로 있었던 미식축구 선수들의 파업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파업 중인 프로 선수들 대신 오합지졸격 대체 선수들을 끌어모아 결국 승리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별 볼 일 없고 유치하기까지 한 이 코미디 영화에 약한 고리가 툭 터진 이유는 주인공 팔콘(키아누 리브스)의 불운 때문이다.
팔콘은 과거에 빛났으나 큰 게임에서 크게 지는 바람에 고약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 그 때 시합을 망친 선수”하고 알아보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다. 재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대체 선수가 되지만 그는 “잘하려고 할수록 더 엉망이 되는 모래늪같은 상태”가 인생에서 가장 두렵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으려 혼자 연습하던 팔콘에게 코치는 “파업중인 주전 선수가 복귀하니 너는 끝났다”고 전해준다. 나는 울컥한 심정이 되어 ‘팔콘! 제발 기죽지 마라’를 마음속으로 외쳐댔지만, 사실 그 이후 영화는 보나마나다. 유일한 스타인 키아누 리브스를 그렇게 퇴장시킬 리 없다.
그는 엉망진창이 된 시합을 보다못해 복귀를 자청하면서 승리를 이끄는 영웅이 된다. 팔콘이 불운을 너무 매끈하게 떨쳐버려 좀 뜨악했지만, 그의 승리에 호들갑스런 찬사 대신 담담한 축하를 보내며 끝마무리하는 것도 이 영화의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이런저런 시험에 실패해 인생이 끝장난 것처럼 좌절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에도 재기의 기회는 온다. 어느 시에서처럼 ‘바람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고, 구원은 뜻하지 않은 데에서 온다.’ 그리고 팔콘은 모처럼 찾아온 재기의 기회를 자기연민에 빠져 흘려보내지 않았다.
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