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하늘이 열리지 않아 유럽 직항로가 없던 까닭에 알래스카에서 한시간 정도 머물고 돌아서 가야하던 때였습니다. 공항 3층 야외전망대에 나가보니 영하 20도의 기온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고 25센트를 내야 렌즈가 열리는 크고 굵직한 망원경을 통해 본 앵커리지의 동틀 무렵은 근사했습니다. 다시 비행기로 오르면서 “언젠가 이 아름다운 땅을 다시 밟으리라”고 다짐하며 알래스카와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습니다. 에스키모의 얼음집도 보고 개썰매를 타는 상상을 하며 말이죠.
그후 13년이 지난 2000년 6월 저는 알래스카 관광청의 명예홍보대사 자격으로 알래스카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 마중나온 일행은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이었고 시내 호텔로 가는 차안에서는 에어컨을 켜야만 했습니다. 제대로 된 빙산을 보려면 앵커리지에서 배를 타고 북쪽으로 6시간을 가야 했고, 개썰매는 겨울에만 가능하며 에스키모는 얼음집이 아니라 청바지를 입고 자동차를 몰며 살고 있었습니다. 강가에선 수영 낚시 캠핑을 즐길수 있으며 푸르른 활엽수가 울창한 숲속에선 삼림욕도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아뿔싸! 13년전 공항에서 본 눈덮인 알래스카는 추운 겨울이었던 겁니다. 앵커리지의 6월은 낮이 길뿐 그저 여느 북반구의 초여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물론 북극점 가까이에 가면 365일이 항상 춥다고 하지만, 알래스카 전체는 아니고 북극곰 빙산 얼음집 등은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이미지일 뿐 결코 전부가 아니었던 겁니다. 알래스카는 항상 흰 눈과 얼음덩어리로 둘러싸인 오지일 거라고 상상했던 저의 무지와 섣부름이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에는 부분만을 보고 전체의 성질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은가 봅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과 열을 아는데 도움이 될 뿐이지, 그 모두를 알 수는 없는가 봅니다. 잘못된 선입견, 편견은 오해를 낳고 더러는 그 오해들이 관계를 치명적으로 다치게 하고 등을 돌리게 만들지요. 그처럼 서로가 서로의 이념과 종교를 오해했을 때, 인류는 피비린내 나는 총질을 해댄 건 아니었을까요?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알래스카에게 미안했습니다.
추신, 최근에 제가 자주 받는 오해 하나 풀어도 될까요? ‘세상 스크린’은 제가 직접 쓰고 있거든요….
<박중훈>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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