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예의란 상대를 배려하는 것'

  • 입력 2000년 8월 7일 19시 09분


박중훈! 중훈아! 박중훈이! 쟤! 너! 야! 박형! 미스터박! 박중훈씨! 박중훈님! 박중훈 영화배우님!….

저를 처음 보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호칭들입니다. 영화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여러 나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 중엔 다소 무례하고 당혹스럽게 이야기를 건네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날 제가 받는 사랑은 수많은 관객님들이 주셨다는 생각에 최소한 겉으론 싱글벙글 웃으려 노력합니다.

▼취중문상 실수 못잊어▼

그러나 저보다 몇 살 많아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미스터박” “자네”하며 폼을 잡고, 저보다 어린 사람들이 함부로 대할 때면 알려진 사람이고, 관객의 사랑이고 뭐고를 떠나 박치기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기본적으로 호의를 갖고 말을 걸어오신 마음은 이해하면서도 우선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몇해전 제법 친한 선배 한 분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늦은 밤 술좌석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일찍 발인이라고 하니, 술을 꽤 마신 그날 밤 문상을 가야 하나, 나중에 장례식이 끝나고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 술자리를 중단하고 목동의 모 병원 영안실을 찾아갔습니다. 술기운에 정상적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똑똑한 어조로 그 선배의 슬픔을 위로하고 반듯하게 돌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제 걸음걸이나 발음은 취기를 숨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조금이나마 슬픔을 나누려고 찾아갔지만 그 선배에게 결과적으로 큰 실례를 하게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민한 성격의 그 선배는 그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지금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몇 년뒤인 작년 설날, 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선후배 동료 친구들이 찾아와 충격에 빠진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습니다. 그분들 대부분은 어두운 양복에 검정 넥타이를 매고 오셨지만 촬영장에서 또는 작업중 소식을 들은 분들은 아마 정장을 하고 올 상황이 안되셨나 봅니다. 심지어 찢어진 청바지에 모자까지 쓰고 온 분들도 있었고, 예전의 저처럼 술좌석에서 온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지난날 제 실수도 있고 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분들 역시 당연히 감사한 분들이지만, 상가집에 맞는 옷차림에 맨 정신으로 왔던 분들이 더 생각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제 솔직한 감정입니다.

▼좋은 의도 바르게 표현을▼

마음속의 아름다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바르게 표현한다는 것. ‘예의’란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드러나는 표현의 형식이 잘못되어 있다면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겁니다. 세상에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알기 전에도 좋아야죠. 아니, 최소한 알기 전 나쁘지는 않아야 되지 않을까요?

<박중훈 영화배우>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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