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두 주인공 남자가 기차길을 쓸쓸히 걷다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기차길은 기차만 다녀야 되는데 사람이 걸으면 청소년교육에 안좋고, 전두환대통령이 통치하시는 5공화국 태평성대에 두 주인공이 희망을 잃고 헤어진다는 내용이 ‘퇴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된뒤 서울 관객 3만명을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극장 앞을 기웃거렸지만 입장하지 못했습니다. 공연윤리위원회에 대한 우리 영화팀의 감정은 분노 이상이었습니다.
◇불운엔 그만한 이유가
1989년 영화 ‘칠수와 만수’를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의 첫 콤비 영화를 관객들은 제법 기대해 주었고 영화도 13개월이란 오랜 촬영기간 끝에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던 터라 저희 영화팀은 소위 ‘대박’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개봉하던 날 하필 제5공화국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그것도 집중적 관심을 받던 전 안기부장 장세동씨의…. 기본적으로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극장 앞 또한 그러했습니다. 큰 히트를 예감했지만 기대와 달리 겨우 히트한 정도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영화 ‘투캅스’는 흥행이 가장 잘된다는 12월 크리스마스시즌에 개봉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투캅스’는 ‘대박’급으로 꼽히던 어느 홍콩영화의 다음 프로로 내정됐던 상태였습니다. 단일 개봉관 시스템이었던 그 당시는 개봉시기가 무척 중요해서 ‘흥행대박’영화는 모두 7월 여름방학 아니면 12월 크리스마스 때에만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홍콩영화가 그 때까지 완성되지 못하는 바람에 ‘투캅스’는 그 영화대신 12월 크리스마스 대목에 앞당겨 개봉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과 실력
결국 ‘깜보’와 ‘칠수와 만수’는 불운했고 ‘투캅스’는 운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수많은 관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깜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서 관객들을 움직일수 없었고 ‘칠수와 만수’는 의미는 있었지만 재미 면에서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고 ‘투캅스’는 무척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건 운보다 영화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도둑이 경찰에 쫓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도둑 입장에선 불운이지만 경찰 입장에선 행운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면 행운이고 불리하면 불운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운’이라는 것은 잘될 때 더 잘되게 해주고 안될 때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지 근본을 바꿀 수는 없겠지요? 제가 아는 행운아들의 공통점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박중훈(영화배우)joonghoon@seromesoft.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