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구경거리를 뜻하는 이 스펙터클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한 사람이 있었으니.... 스필버그? 천만에!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그는 TV와 같은 시각적 매체가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기 위해 종종 다른 방해요소, 이야기, 논리, 의미와 같은 담론들을 생략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점을 적극 활용했고 결국 우리가 TV에서 본 남북정상회담은 회담이 아니라 '김정일 스펙터클'이었을 뿐이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그러한 스펙터클의 연장이었다. TV는 고향방문단의 출발과 도착의 여정을 생중계하고 (그게 그렇게 중요했던가?) 상봉의 울음바다를 극적으로 장면화해냈다. 그리고 헤어지는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또 다시 스펙터클하게 처리해 낸다. 그것 뿐이다. 그랬을 뿐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스펙터클 속에서 우리는 상품을 소비하고 시간을 소비하며 감정마저도 소비한다.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TV의 스펙터클안에서 그렇게 소비됐고 그들의 눈물도 회한도 그리고 우리의 가슴뭉클한 안타까움도 그렇게 소비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이 모든 것을 과잉현실(hyper-reality)이라고 불렀다. TV 속의 스펙터클은 현실을 과잉화하기에 현실로부터 멀어진다. 그가 '걸프전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나 역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TV속의 북한은 이미 통일에 관한 담론이 아닌 스펙터클한 영상소비재일 뿐이다.
한정석(PD.영화평론가) kalito@crez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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