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역시 이런 청춘영화의 컨벤션을 그대로 답습한다. 지구상에 이런 학교가 있을까 싶게 왈패들만 모여있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 이 이상한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온통 사랑으로만 귀결되어 있다. 아이들은 공부보단 운동장에 모여 미식축구를 하는 게 주업무고 매일 밤 부잣집 아이들이 주선하는 파티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온갖 사랑의 사탕발림이 난무하는 이 고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지적인 여자아이 카타리나(줄리아 스틸레스). 캣(Cat 고양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녀는 아이들이 흔히 갖는 관심사에서 멀찍이 떨어져 여류 작가들의 소설을 읽거나 미식 축구에 더 열을 올린다. 당연히 그녀를 좋아하는 남학생은 한 사람도 없다. 그녀 역시 남자들의 입맛에 맞게 치장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캣의 동생 비앙카(라리사 오리니크)는 다르다. 뭇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이른바 '킹카족'이다. 예쁜 데다 착하기까지 한 그녀는 온갖 남성들의 추파를 견뎌내는 것도 벅찬 여성이지만 엄격한 아버지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데이트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연애의 '쑥맥'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학생들 중엔 여지없이 부잣집 남학생이 끼어 있다.
상반된 캐릭터의 두 딸을 둔 아버지는 이쯤에서 '어의없는 제안'을 내놓는다. 연애에 관심 없는 언니가 데이트를 시작하면 동생 역시 데이트를 해도 된다는 것이다. 속뜻은 청천벽력이 일어나도 캣이 데이트를 시작할 리 없다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지만, 정말 그렇다면 영화가 얼마나 밋밋하겠는가.
동생 비앙카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별로 튀지 않는 소년 카메론(조셉 고든 레비트)은 드디어 셰익스피어 희곡에서나 벌어질 법한 '위대한 계략'을 만들어낸다. 캣을 휘어잡을 수 있는 터프한 남자를 꼬셔 '사랑의 화살표'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작전을 짜낸 것이다.
이런 멋진 계략을 달성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 법. 카메론은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부잣집 소년 조이(앤드류 키간)를 꼬드겨 터프한 남자의 연애 뒷돈을 대라고 부탁한다. 그렇게만 되면 너도 비앙카와 데이트를 할 수 있으리라는 사탕발림으로.
터프한 남자아이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페트릭 베로나다. <패트리어트>에서 멜 깁슨의 아들 역을 맡았던 헤스 레저는 '터프한' 페트릭이 되어 야성미 넘치는 매력과 달콤한 사랑의 양면을 보여준다. 카메론에겐 캣에 대한 정보(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를, 조이에겐 데이트 비용을 얻어낸 페트릭은 우여곡절 끝에 캣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성공의 열쇠가 가관이다. 그는 <그리스>에서 존 트래볼타가 그랬던 것처럼 멋진 뮤지컬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캣을 유혹한다. 그리고 영화는 실비아 플러스의 책을 좋아하는 지적인 여자아이도 별 수 없이 유치하다는 걸 보여준다. 사랑은 어차피 그렇게 유치한 것이고 유치하지 않다면 멋진 스파크가 일어날 수 없는 게 또한 사랑이니까, 다 수긍할 만하다.
청춘영화다운 유치함으로 즐거운 웃음을 만들어주는 이 영화의 사랑사건은 물론 해피엔딩으로 마무린 된다. 모든 커플은 사랑을 완성하고, '돈'의 노예였던 부잣집 소년만 외톨이로 남는다. 뻔한 스토리지만 낭만적인(가끔은 유치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달콤한 감성도 자극해 줄 수 있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널 싫어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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