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현대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세대별로 다른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들의 삶을 보여준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레즈비언들의 자극적 베드씬말고 볼 게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에겐 편견을 뛰어넘는 ‘사랑의 조건’을 생각해보게 하는 꽤 진지한 영화다.
2000년의 레즈비언 커플인 프랜(샤론 스톤)과 칼(엘렌 드제너러스)의 아이갖기 작전을 그린 첫째 에피소드는 엘렌 드제너러스와 실제 레즈비언 커플이었던 배우 앤 헤이시가 감독했다. 경쾌한 워밍업같은 첫째 에피소드가 끝난 뒤부터 이 영화는 빛을 발한다.
둘째 에피소드는 여성해방운동의 발흥기인 1972년이 배경. 레즈비언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린다(미셸 윌리엄스)는 페미니스트와 거리가 먼 남장 여성 에이미(클로에 셰비니)에게 끌린다.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들에게 린다가 “너희가 에이미를 싫어하는 것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꼬집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이미 역의 클로에 셰비니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동성애자인 브랜든 티나의 친구로 나왔던 배우.
1962년을 그린 마지막 에피소드는 세 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30년을 함께 살아온 레즈비언 커플 중 애비(엘리자베스 퍼킨스)가 먼저 죽자 혼자가 된 에디스(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슬픔조차 토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홀로 조용히 고통을 감내한다. 에디스의 아픔을 가슴 저리게 연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탔다. 4년전 낙태문제를 다룬 데미 무어 주연의 ‘더 월’(96년)을 만든 미국 케이블TV HBO가 제작했다. 새롬 엔터테인먼트 출시.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