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은 TV에선 독설로 가득찬 수다를 떨면서도 영화에서는 절망과 고통스러운 침묵을 그려온 기타노 다케시가 96년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난 뒤 만든 첫 영화. 자전적 인 이 영화에서 기타노 감독은 이전 영화들과 달리 죽음보다는 삶을 지지하며, 주인공들에게 실낱같은 희망과 낙관을 허락한다. 죽음과 대면해 본 경험을 통해 그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일까.
고교 동창 마사루(가네코 켄)와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선생님을 골탕먹이고 성인 영화관에 들락거리는 ‘문제아’들. 만담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던 마사루는 어느날 권투선수에게 두들겨 맞은뒤 복수를 하려고 권투를 배운다. 그러나 선수가 될만한 소질은 마사루보다는 신지에게 있었다. 마사루는 권투를 그만두고 야쿠자 조직에 들어간다.
신지는 권투선수가 되고 마사루는 야쿠자 중간보스가 되지만, 냉혹한 현실을 잘 모르는 이들은 곧 실패를 온 몸으로 겪는다. 선배의 잘못된 충고를 따르다 망가진 신지가 링에서 무릎꿇고 마사루가 보스에게 대들다 린치를 당하는 모습을 교차해 비추는 장면은, 이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어른이 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여준다.
패배한 신지와 버림받은 마사루처럼, 다른 고교 동창들도 사회에 나가 혹독함만 배우게 된다. 세상은 이들에게 결코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번듯한 성취를 제 것으로 하지 못했어도, “우리 이제 끝난 거냐”는 신지의 질문에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마사루의 말은 가느다란 희망 한 가닥을 보는 이의 가슴에 심어 준다.
보는 이의 사춘기 시절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 시절의 혼돈을 애정어린 눈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울림을 지닌 성장영화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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