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천국]<내일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

  • 입력 2001년 1월 15일 19시 04분


‘간절히 바라는 일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잠언은, 행운의 여신이 등을 돌린 어떤 이들에겐 헛된 약속에 불과하다. 이솝우화에서 선반 위의 탐스러운 포도를 가지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저건 신 포도야”하고 돌아서는 여우의 체념은 차라리 영악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비디오로 곧장 출시된 영화 ‘내일은 태양이 뜨지 않는다(Star Maps)’는 그런 적당한 포기와 체념을 미리 배우지 못한 채 꿈에 부푼 한 소년이 좌절하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이 꿈을 이룰 기회를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잔인한 영화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18세 소년 카를로스(더글라스 스페인)는 할리우드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가족이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돌아온다. 그는 연예산업에 발을 걸치고 있는 아버지 페페(에프레인 피구에로)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페페는 카를로스에게 길거리에서 스타들의 집을 표기한 지도를 파는 일을 시킨다.

지도를 파는 일은 허울일 뿐,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몸을 파는 남창(男娼)의 역할이 카를로스에게 주어진다. 그는 늘 손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드릴까요?”하고 묻는다. 자신의 열망에 혼을 빼앗긴 카를로스는 남창 노릇도 배우가 되기 위한 실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카를로스의 꿈은 사악한 아버지가 군림하는 끔찍한 가족과 가난한 현실을 견뎌내는 환상같은 것이기도 하다. 영화 중반, 꿈에 부푼 카를로스는 “이 세상 사람들의 차이는 빈부가 아니라 사랑에서 얼마나 쾌락을 느끼느냐의 차이”라고 부유한 여자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카를로스를 비추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쾌락과 상관없이 세상은 불공평할 뿐’이라는 감독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비극적 드라마에 약간의 블랙 코미디, 마술적 리얼리즘이 뒤섞인 이 영화는 극적인 전개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지만 다소 산만하다. 기둥 줄거리에 곁들인 작은 이야기들은 때로 불필요해 보인다. 감독 미구엘 아테타. 20세기폭스 출시.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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