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세상을 밀어내는 것인지 세상이 그를 밀어내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량기가 몸에 밴 그는 사고뭉치처럼 떠돌아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기묘한 스타. 99년 런던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파파라치를 때려 눕혔을 때도, 94년 뉴욕 아파트의 기물을 때려 부셔 긴급 체포됐을 때도, 사람들은 "조니 뎁이니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티꺼움'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스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모두 거부하고 정상적인 역할이라면 손사래치며 한사코 마다하는 그는, 역설적이게도 온갖 잡지들이 공언하는 '아름다운 남자'다. 95년 영화 전문 월간지 <엠파이어>지는 조니 뎁을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남자 100인' 안에 끼워주었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100명의 무비스타', '섹시한 영화배우 50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그런데도 그는 "15세 이후 세상이 나를 내동댕이쳤다"고 느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집을 정신적인 안식처로 느껴본 적이 없으며, 학교는 지루하다는 핑계로 일찌감치 때려치웠다. 요즘도 그는 자신의 사춘기가 "모호한 터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스스로를 유폐시켰고, 그 방안에 기타 하나만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기타. 그것만이 조니 뎁의 지친 삶을 위로해준 유일한 친구였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사회 부적응자였던 조니 뎁에게 실낱처럼 작은 희망이었던 기타리스트의 꿈은 쉽게 이루어졌다. "존 덴버의 음악에 취해 있던" 청춘기를 'The Kids', 'P' 등 15개의 밴드를 전전하며 모두 소진했고, 그걸로 곧 바스러질지 모를 상처 난 영혼을 달랬다.
니콜러스 케이지와의 특별한 만남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도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3류 밴드에 머물렀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불량기 많은 사회 부적응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금세 알아봤다. 먼지 날리는 지하터널이 잘 어울리는 니콜러스 케이지는 자신의 에이전트에 조니 뎁을 소개했고, 곧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84)의 글렌 랜츠 역이 그에게 주어졌다.
<플래툰(Platoon)>(86)의 하찮은 통역병 역을 거쳐 <크라이 베이비(Cry-Baby)>(90)에 캐스팅 되었을 땐 이 조무래기 배우의 삶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할리우드 아이돌 스타로 "인스턴트처럼 해치워질 뻔한" 조니 뎁은 존 워터스라는 '악취미' 감독을 만나 구제됐다. 눈물 한 방울로 소녀들을 기절시키는 10대 불량배 그룹의 리더 '크라이 베이비'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동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조디 뎁과 밀접한 캐릭터다. 그러나 이건 사실 시작에 불과했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Edward Scissorhands)>(90)에서 세상과 격리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가위손 사나이로 부활한 조니 뎁은 정신박약아 동생에게 휘둘리는 '착한' 길버트 그레이프를 지나 <베니와 준(Benny & Joon)>(93)의 엉뚱한 소년 준, <에드우드(Ed Wood)>(94)의 B급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세상 '밖에' 서 있는 비틀린 사내로 남았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엔 언제나 강인함 대신 뜨거운 연민이 스며있다. <스피드(Speed)>(94)나 <가을의 전설(legend of the Fall)>(94)처럼 거대 프로젝트의 구애를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블록버스터 히어로에 매번 냉담한 모습을 보였다. 대신 할리우드에서 악동 취급받는 감독들의 영화나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처럼 한 수 배울 수 있는 거장 배우들의 영화에 '싼 보수'로 출연해왔다. 최소한 그는 '돈의 노예'는 아니었던 셈이다.
미국 문화 월간지 <베니트페어>지는 이런 그를 가리켜 "스타가 된 후에도 여전히 골목길에 오줌을 내갈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디 뎁 또한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내 안엔 어둠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늘 떠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어둠의 정체는 어쩌면 '바이퍼 룸' 앞에서 삶의 온기를 빼앗긴 리버 피닉스의 죽음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버가 약물중독이라는 오명으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몸을 눕혔을 때,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셔낼 뻔한 조니 뎁은 또 다시 짙은 어두움 안에 갇혀버렸다. 한마디로 그건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바이퍼 룸'은 조니 뎁이 경영하던 라이브 클럽이었고, 오랫동안 그는 친구의 죽음에 큰 빚을 진 듯 괴로워했다. 실제로 리버의 죽음은 조니 뎁과 무관한 약물중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됐건 그는 이 사건 이후 더욱 어두워졌으나, 할리우드는 다른 배우들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조니 뎁만의 이 독특한 아우라를 사랑했다. 그는 지나칠 만큼 불손했으나 일에 대한 열정 만큼은 과도하게 넘치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가위손>부터 <슬리피 할로우(Sleepy Hollow)>(99)까지 무려 3편의 영화를 함께 한 팀 버튼 감독은 그를 "진흙탕 속에서 끌려 다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라고 말했다.
진흙탕에서 뒹굴길 자처하는 그는 9월23일 개봉되는 <에스트로넛(The Astronaut's Wife)>(99)에서 또 다시 '망가진 모습'을 선보인다. 우주에서 2분간 통신두절 상태에 빠진 젊은 우주비행사 스펜서. 외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무늬만 스페서'인 남자로 귀환한 그는 사랑스런 아내를 혼란에 빠뜨리는 불길한 사내다. 지구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유포할지도 모를 스펜서는 실제 조니 뎁과 얼마나 닮았을까.
단언컨대 그는 불온하지만 결코 바이러스를 유포할 만큼 위험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뭇 여성들에게 조니 뎁은 적당히 위험한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값비싼 자동차와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다가도 어느새 다른 여자의 품에 안겨 어리석은 방종을 저지를지도 모를 남자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위노나 라이더와 열애중일 당시 오른쪽 어깨에 "위노나 포에버(Winona)"라는 글귀를 새겼던 그는, 그녀와 헤어진 뒤 'Winona'의 'na'를 지우고 'wino(발음상 '왜 안돼?'라는 뜻이다)'만 남겨놓는 엉뚱한 짓을 벌이기도 했다.
위노나와 헤어진 뒤 세릴리 펜, 제니퍼 그레이, 케리 앤 모스 등의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던 그는 현재 프랑스 톱 모델 겸 배우인 바네사 파라디와 동거중이다. 그런데 최근 뜨거웠던 두 사람의 사랑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해 화제다. 문제의 원흉은 물론 조니 뎁. '바람둥이' 조니 뎁이 둘째 아이를 임신중인 바네사를 두고 크리스티나 리치와 바람을 피워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경계경보가 켜져 있는 연애 전선에 비해 영화배우로서의 그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샐리 포터 감독이 연출한 <더 맨 후 크라이드(The Man Who Cried)>와 올해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인 <밤이 가기 전(Before Night Falls)>이 전미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페넬로페 크루즈와 공연한 <블로우(Blow)>, 줄리엣 비노쉬와 공연한 <초콜릿(Chocolat)>, 테리 길리엄 감독이 연출하는 <더 맨 후 킬드 돈키호테(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 휴즈 형제가 연출하는 <프럼 헬(From Hell)> 등이 차기작으로 줄줄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쉴 틈 없이 바쁘게, 그러나 할리우드 메인 스트림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유영하는 조니 뎁은 "여태까지의 삶이 모두 가짜였고 이제야 진짜 삶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건 물론 자신의 분신인 릴리 로즈 멜로디 뎁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멜로디가 태어난 99년 5월27일까지 내 삶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단순한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내게 '진짜 삶'을 선물했다." 이제 비로소 환영이 아닌 진짜 삶을 살게 된 조니 뎁. 그에게 지금 가장 어울리는 한마디는 "포에버 조니 뎁(Forever Johnny Depp)"이 아닐까.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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