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의 재팬무비]<아바론>"거 참 희한한 영화입니다"

  • 입력 2001년 2월 2일 16시 21분


<아바론>은 꽤나 희한한 영화입니다. 영화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애니메이션도 아닙니다. 애매한 작품입니다.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제 애니메이션, 이른바 '재패니메이션'의 기수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이 최근 일본에서 개봉시킨 영화(한국에서는 2월10일 개봉)로, 네덜란드에서 촬영한 실사 영상을 디지털로 가공했다고 합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융합시키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셈입니다.

가까운 미래. 젊은이들은 가상 전투 게임에 열중하느라 제정신이 아닙니다. 가상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지극히 위험해서 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전사 애슈는 비숍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도전을 받습니다. 이후 애슈는 '크라스 SA'라는 난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새로운 전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상이 대략의 줄거리입니다만 역시 <공각기동대>를 연출하고 <인랑>을 제작한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답게 이야기에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는 탓에 뭐가 뭔지 확실히 알아채기 힘듭니다. 꽤나 정신 차려서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공연히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뒤섞어 놓은 게 아니라 이를 이용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영화가 틀림없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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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장면은 주로 바르샤바의 시가지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3개월에 걸친 로케이션에서는 군의 협력을 받아 전차와 헬리콥터 등을 동원했고 엑스트라들도 200여 명 동원됐다는군요. 실사 영상의 디지털 처리에는 반년쯤 걸렸다고 합니다. 전사가 죽고 난 뒤 2차원화되어 소멸하는 영상 등이 첨가되기도 했답니다.

그냥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운 기법을 향한 도전이라는 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실사와 가공된 애니메이션이 혼재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애매한 새로운 영상 세계를 만들어낸 작업이었던 겁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아바론>은 주인공이 현실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감을 구현하면 구현할수록 영상은 현실에서 멀어져가고 맙니다. 현실과 허구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가 아닐까 합니다."

현실과 허구를 관객들이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허구인 애니메이션만으로 찍어서는 효과가 반감되리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현실감을 테마로 삼기 위해서는 "정서와 실제감, 현장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시이 감독은 바르샤바에서의 촬영으로 바로 그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세대는 전쟁이라면 걸프전이나 체첸 정도를 떠올리지요. 피상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르샤바의 거리에 서보니 거리마다에 새겨진 시간과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르샤바 봉기 때 누가 여기에서 죽었다는 따위의 역사 말입니다. 평범한 거리에 어마어마한 정보가 잠자고 있는 셈이지요. 도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 아니겠습니까?"

오시이 마모루는 1951년 생으로 올해 만 쉰 살이 됐습니다. <우루보시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84) 등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95년 <공각기동대>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럽에서는 이 한 작품 때문에 재패니메이션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말고도 <붉은 안경>(84) 등 실사 영화에도 의욕을 보여왔습니다. 그뒤 기어이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뒤섞여 있는 작품까지 만든 셈입니다.

"일본인들은 디지털로 애니메이션만 만들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이제는 역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실사에 가까운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실사니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경계가 무의미하게 된 거지요. <아바론>의 주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66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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