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젊은이들은 가상 전투 게임에 열중하느라 제정신이 아닙니다. 가상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지극히 위험해서 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전사 애슈는 비숍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도전을 받습니다. 이후 애슈는 '크라스 SA'라는 난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새로운 전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상이 대략의 줄거리입니다만 역시 <공각기동대>를 연출하고 <인랑>을 제작한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답게 이야기에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는 탓에 뭐가 뭔지 확실히 알아채기 힘듭니다. 꽤나 정신 차려서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공연히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뒤섞어 놓은 게 아니라 이를 이용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영화가 틀림없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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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장면은 주로 바르샤바의 시가지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3개월에 걸친 로케이션에서는 군의 협력을 받아 전차와 헬리콥터 등을 동원했고 엑스트라들도 200여 명 동원됐다는군요. 실사 영상의 디지털 처리에는 반년쯤 걸렸다고 합니다. 전사가 죽고 난 뒤 2차원화되어 소멸하는 영상 등이 첨가되기도 했답니다.
그냥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운 기법을 향한 도전이라는 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실사와 가공된 애니메이션이 혼재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애매한 새로운 영상 세계를 만들어낸 작업이었던 겁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아바론>은 주인공이 현실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감을 구현하면 구현할수록 영상은 현실에서 멀어져가고 맙니다. 현실과 허구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가 아닐까 합니다."
현실과 허구를 관객들이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허구인 애니메이션만으로 찍어서는 효과가 반감되리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현실감을 테마로 삼기 위해서는 "정서와 실제감, 현장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시이 감독은 바르샤바에서의 촬영으로 바로 그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세대는 전쟁이라면 걸프전이나 체첸 정도를 떠올리지요. 피상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르샤바의 거리에 서보니 거리마다에 새겨진 시간과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르샤바 봉기 때 누가 여기에서 죽었다는 따위의 역사 말입니다. 평범한 거리에 어마어마한 정보가 잠자고 있는 셈이지요. 도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 아니겠습니까?"
오시이 마모루는 1951년 생으로 올해 만 쉰 살이 됐습니다. <우루보시 녀석들 2/ 뷰티풀 드리머>(84) 등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95년 <공각기동대>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럽에서는 이 한 작품 때문에 재패니메이션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말고도 <붉은 안경>(84) 등 실사 영화에도 의욕을 보여왔습니다. 그뒤 기어이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뒤섞여 있는 작품까지 만든 셈입니다.
"일본인들은 디지털로 애니메이션만 만들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이제는 역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실사에 가까운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실사니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경계가 무의미하게 된 거지요. <아바론>의 주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66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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