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는 웃지 않는다. 웃기는 커녕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살아간다. 호호 깔깔, 공기를 가볍게 흔드는 그 경쾌한 소리는 이미 그 자체로 웃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좀처럼 웃지 않는 것 같다.
얼굴 근육을 가볍게 이완시키는 사소한 동작이지만 우리는 마치 그 행위를 잊은 것처럼 살아간다. 기껏해야 유행하는 농담이나 어젯밤에 시청한 개그맨의 입담을 늘어놓으며 강박적으로 큰 소리를 낼뿐이다.
그것이 ‘채플린 적’이든 ‘심형래 적’이든 웃음이란 어쨌거나 여유와 성찰의 계기가 된다. 만약 우리가 웃지 않는다면?. 경쟁의 링에서 치열하고 맞싸우고 있을 뿐인 우리를 보게 될 것이며 성찰이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럴진데 어찌 웃지 않겠는가. 경직되고 경쟁 일변도의 구조속에서 ‘웃음을 권하는 사회’를 도모하는 것은 실로 우리 시대의 중차대한 도덕적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스오 마사유키 감독의 웃음이 그것이다. ‘일상의 참 웃음’이란 주제 아래 영화를 선별한다면 그의 작품은 반드시 상위에 오를 만하다. 우선 제 20회 일본 아카데미상의 13개 부문을 휩쓸어 미국 시장까지 진출했던 ‘쉘 위 댄스’가 그렇다. 그 쪽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지 이 영화에서 사교댄스는 드러내놓고 즐길 만한 여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실정인데 감독은 무도교습소를 찾은 허름한 인생들의 둔탁한 스텝을 통해 일상의 웃음과 그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를 만들기 4년 전에 개봉한 ‘으랏차차 스모부’ 역시 마사유키 감독의 작가성과 상업성을 잘 보여준다. 졸업장 하나 건지기 위해 억지로 스모부에 가입한 신출내기와 궤멸 당한 무림파의 마지막 수제자처럼 도장을 지키고 있는 선배 아오키, 그리고 초등학교 선수에게도 연전연패를 당하는 이들에게 의기투합하는 아나야마 교수를 마치 손 안의 구슬처럼 여유 있게 다루면서 마사유키 감독은 경쾌하면서도 음미할 만한 웃음의 성찬을 펼친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리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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