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체라고 해서 봐주거나 가망이 없다 해서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스포츠가 아니다. 지난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 당시 앞서가던 프랑스가 상대 문전에서 장난스런 묘기를 하자 허정무 해설위원이 “저런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충고한 것은 정녕 승부사다운 지적이다.그럴진대 메이저리그의 백전노장 칼 립켄 주니어에게 박찬호가 고의성 홈런을 맞았다고 하는 의혹은 그 자체로 음미해볼 만하다.
지난 주의 명승부가 그렇다. 롯데 김명성 감독의 영결식이 엄수된 날 저녁, 롯데는 KBO의 무리한 일정 추진으로 해태와 맞붙었다. 결과는 시간제한 무승부. 사회의 다른 분야였다면 이날 만큼은 해태가 양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태는 영결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경기에 임한 롯데와 역전에 재역전을 치르는 혈전으로 시간제한 무승부라는 진기록을 남김으로써 김명성 감독에 대한 순도높은 추모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해태 차례.
지난 일요일 해태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경기를 치뤘다. 8월이면 그들은 기아 타이거스가 된다. 상대는 해태 전설의 영웅인 삼성의 김응용 감독. 그러나 그들은 역시 승부사였다. 피어린 혈전 끝에 삼성의 8-6 역전승. 그것은 김응용 감독이 해태에게 선사한 진정한 고별사였다.
2차대전 중 독일의 포로수용소. 포로들을 대상으로 독일축구팀이 도전장을 낸다. 포로 팀은 연습 한번 제대로 못한 오합지졸. 헐리우드의 노장 존 휴스턴이 81년에 만든 축구 영화 ‘승리의 탈출’이다.
축구 영웅 펠레와 실베스타 스탤론이 주연. 전쟁 영화의 공식대로 포로들은 경기 도중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고민이 있다. 탈출하면 축구 경기는 패배가 된다. 그리하여 실베스타 스탤론은 경기장으로 돌아온다. 이어지는 펠레의 결승골. 축구 경기의 세밀한 모습이 현실감 넘치고 포로들의 갈등이 납득이 가는 스포츠 영화의 수작. 물론 승리를 위해 탈출과 자유를 포기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롯데와 해태가 치른 운명의 명승부를 생각할 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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