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21/스폰서]「미래의 대가」굳게 믿고「先투자」

  • 입력 1999년 2월 24일 19시 37분


《“중앙부처 국장자리에 오르기까지 변변한 스폰서 한명도 없었다면 집안이 원래 부자이거나 아니면 부처 내에서 왕따공무원일 것이다.” 한 경제부처 간부의 말이다.

스폰서문화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아직도 부서장들이 부서운영과 관련, 비공식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든든한 스폰서 덕분에 부회식을 자주 하는 부서장은 조직 내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반면 일부에서는 관민(官民)유착을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한다.

스폰서 입장에서 순수한 돈은 결코 없으며 후배나 동향출신 관료들을 위해 들어간 돈도 멀리 보면 반드시 대가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관료사회의 스폰서문화에 대하여 ‘클린21’팀이 살펴보았다.》

“똑똑한 사무관 하나 키우시지요.”

건설업을 하는 P씨(54)는 몇해 전에 한 경제부처의 간부로부터 동향의 후배 한 사람을 소개받았다. 후배는 일류대를 나왔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에 배치된지 얼마 안된 사무관이었다. 몇번의 술자리가 있었고 두 사람은 곧 가까워졌다. P씨는 후배를 위해 술을 샀고 후배의 부(部)회식이나 행사 비용을 댄 적도 많았다. P씨는 말하자면 후배의 스폰서가 된 셈이었다.

P씨와 후배의 관계는 우리 관료사회의 관행이 돼버린 ‘스폰서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업인이 힘있는 공무원의 후원자가 돼 도와주고 그 대가로 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다.

관리들의 모임에는 으레 스폰서가 따라붙는다. 영향력있거나 대민업무가 많은 부처일수록 더 그렇다. 청와대 검찰 경찰 재경부 예산청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안전청 등의 고위 공무원들치고 한두사람의 스폰서를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후원자란 뜻을 갖는 스폰서(sponsor)는 원래 좋은 의미로 쓰였다. 음악사나 미술사를 보면 후원자가 있었기에 생계 걱정을 잊고 위대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스폰서란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고 지금도 대개는 그렇게 쓰인다. 프로 골퍼 박세리는 삼성이란 든든한 스폰서가 없었다면 세계적 선수가 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파리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해 화제가 됐던 옌볜(延邊)의 조선족 작곡가 안승필은 박성용(朴晟容)금호그룹 명예회장의 후원을 받고 있다. 청각장애인이나 골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천안북일고의 이승만(李承晩·19)군은 정일영(鄭一永)의원과 심대평(沈大平)충남지사가 후원자다.

관료사회에서도 순수한 의미에서의 스폰서십은 종종 볼 수 있다. 경찰청 경무관 L씨는 한때 전남 나주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농민운동의 본거지격이었던 나주에서 그는 농민운동단체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 통할 수 있을만큼 깊은 신뢰관계를 쌓았다. 농민운동단체 사람들은 지금도 그 때의 정의(情誼)를 못잊어 명절 때면 L씨에게 배 한두상자를 보낸다. 이들은 자신들이 L씨의 후원자라고 믿고 있다.

문제는 이런 스폰서십이 관료사회에서 부패의 싹으로 변질돼 왔다는 점이다.스폰서란 미명하에 개인의 이기주의와 관(官)의 힘이 결탁해 공정한 게임의 룰을 깨 왔다는 것. 경제부처 한 국장(49)의 고백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의미로 만난다. 그러나 신세를 지다보면 스폰서가 되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스폰서쪽에서도 이것을 노리고 스폰서가 됐을 것이다.”

스폰서문화는 공무원사회 내부에서도 위화감을 조성한다.공직기강을 담당하고 있는 총리실의 한 간부의 지적이다.

“스폰서의 긍정적인 측면 운운하는데 그렇다면 왜 스폰서가 힘있고 영향력있는 부서의 공무원들에게만 몰리는가. 힘 없는 부처의 공무원들이 느끼는 상대적 궁핍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스폰서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마련해 주는 경우도 있다. 한 검찰 고위간부의 말이다.

“친척들이나 어릴적 친구들부터가 스폰서의 폐단을 잘 알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지마라’면서 가끔 돈을 준다. 이 돈은 전부 수사비나 직원들 회식비로 쓰인다. 그러나 요즘은 솔직히 그런 돈조차도 부담스럽다.”

중앙부처의 간부쯤 되면 현실적으로 돈 쓸 곳은 많은데 예산은 따라주지 못해 스폰서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행정자치부의 한 간부의 푸념이다.

“부나 국의 운영비가 절대 부족하다. 이런 부분을 국가에서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집안이 원래 부자거나 처가라도 잘 사는 사람만이 공무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스폰서 문화의 폐해는 심각하다. 그것은 관(官)과 기업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이익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발전을 막는다. 기업의 접대비 떡값 등의 관행은 바로 잘못된 스폰서문화의 변형이다.

미국의 경우 공무원을 상대로 한 어떤 스폰서십도 인정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20달러(약 2만4천원)이상의 식사나 선물을 제공받지 못한다. 업체 사람과 함께 어울릴 경우 어김 없이 ‘이익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s) 원칙에 걸린다.

동아일보 ‘클린 21’ 자문위원인 성균관대 박재완(朴宰完·행정학)교수는 “스폰서십은 ‘미래의 부패’를 약속하거나 기대하는 행위”라고 지적했고 연세대 조혜정(趙惠貞·사회학)교수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해치는 파워 그룹끼리의 담합”이라고 말했다.

<클린21팀>이병기(사회부)공종식(정치부)부형권(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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