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모른다. ‘창은 안 된다’는 유일 정책을 빼곤 통하는 게 없는 두 사람이 러브 없는 러브샷을 할 때부터 저들이 과연 합방이나 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누가 정치인 아니랄까봐 하루도 못 가서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조루성 고질병을 드러내더니,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설사 TV토론을 해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도, 그래도 후보등록날 아니 투표 당일까지는 알 수 없다는 불신과 냉소가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다. ▼뽑고 싶은 후보가 없다▼ 단일화가 옳아서가 아니다. 만약 내가 역겨워하는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누가 내게서 선택권을 뺏었는지 분통터질 것이다. 여론조사를 믿어서도 아니다. 사람들이 존중한다고 말하는 지도자의 자질과 실제 그들이 인정하고 승복하는 지도자의 속성은 다르다고 마키아벨리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도 두 후보는 저희들끼리 손가락을 걸었다. 아무리 말 바꾸기를 업으로 삼는 정치인이라도 그 약속마저 깨는 자는 ‘몽’이 언젠가 말한 대로 ‘남자도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단일화를 하든 말든 그건 두 당, 두 사람의 일이라고 치자. 문제는 현재의 빅3 후보들을 암만 순한 맘으로 들여다봐도 뽑고 싶은 대통령이 없다는 데 있다. 나만 인간이 비틀렸기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다. 1997년 이맘때 국제통화기금(IMF) 앞에 엎드려 경제주권을 잃었을 적에도 우리는 이렇게 대선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새로 뽑힌 대통령은 어떻게든 ‘I am F’의 치욕을 해결해 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요새는 한길을 막고 물어봐도 그런 희망을 가진 사람이 없다. 10년 전,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던 대통령을 뽑았더니 그 무능함으로 전 국민을 F로 만들어버렸다. 5년 전, 머리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대통령을 뽑았으나 전임자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말았다. “측근에 의한 파벌정치를 없애고 경제정책에 정치논리를 개입시키지 말고 독선적 통치방식을 배제하고 아들 및 친족의 권력 세력화를 막으라”고 했던, 당선이 확정된 날 본보에 실린 ‘DJ, 제2의 YS 안되려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예언처럼 섬뜩하다. 머리 좋은 대통령이나 아닌 대통령이나, 정권을 바꾸나 안 바꾸나, 보수적 정당이나 진보적 정당이나 누구를 뽑아도 결국 마찬가지일진대 도대체 대통령선거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공산주의가 20세기의 휴지통으로 들어간 것처럼, 한국에서 나온 여덟 명의 대통령 중 단 한 명도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없다면 이건 망한 제도나 다름없다.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된대도 제3의 YS 또는 제2의 DJ는 또 나올 것이다. ‘창’은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에 군림해온 기득권 수호세력이고, ‘노’는 5년간 실정만 거듭하다 이제 와서 정치개혁하겠다고 나선 집권당의 적자이며, ‘몽’은 월드컵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재벌2세다. 지금 저마다 아름다운 공약을 쏟아놔도 그대로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당장 선거공영제 등 개혁입법 처리마저 깔아뭉갠 집단의 대표주자가 바로 그들 아니더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대통령은 초인(超人)이다. 삶의 질, 민주사회, 평화통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역사는 발전한다는 희망만 뺏지 않아도 족하다. “집권 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던 싱가포르의 리콴유처럼, 추상같은 신념과 탁월한 비전을 지닌 영웅이 왜 우리에겐 나오지 않는가. ▼국민 수준의 대통령이라면▼ 남 탓할 것 없다. 영국의 조직행동학자 나이겔 니컬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조직은 딱 제 수준에 맞는 장(長)을 갖는다는 게 정설이다. 지금까지의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인것은 우리 국민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됐기때문임을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대통령 한 사람으로 달라질 현실이 아니라면, 나 혼자 이민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제몫밖에 모르는 반사회적 존재라면 이제는 사람보다 시스템으로 문제를 풀어가게끔 우리가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 무서운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도록.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