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2003동아 LG 국제만화 페스티벌 수상작' 외

  • 입력 2003년 7월 3일 17시 48분


▼부문별 대상작품▼

◇극화 대상

‘Blow’ 유현호

성형외과 의사 K씨의 취미는 유리 공예다. 그는 녹은 유리에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여성의 몸통을 빚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어느날 그의 병원에 한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는 학생 시절부터 가슴이 작다고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고 이번에는 애인에게 구박받았다. 그녀는 K씨에게 “가슴이 커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한다.

K씨는 수술에 앞서 손이 아니라 입을 닦고, 수술대 위에 묶인 채 기다리는 그녀에게 다가가 갑자기 입술을 덮친다. 놀란 그녀는 자신의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란다.

수술이 끝난 뒤 여성은 결과에 만족하며 떠나고, K씨는 유리를 이용한 수술에 성공했다고 흡족해한다. 그는 이제 다른 신체 부위의 수술도 유리공예로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 프랑스 만화의 사실적 그림체를 연상시키는 치밀한 인체 묘사와 세필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채색으로 호평을 받았다. 성형미인을 양산하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풍자를 유리공예라는 소재에 접목시킨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스토리를 깔끔하면서도 재미있게 마무리지은 점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카툰 대상

‘Vogue’ 카자네프스키(우크라이나)

아프리카인으로 보이는 다섯 명의 원주민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인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섯 명의 코를 꿰뚫고 있는 올림픽의 오륜(五輪)이 그들을 말 그대로 ‘한몸’으로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우리 국민도 월드컵을 계기로 동질감을 확인하는 가슴벅찬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진다. 밝아보이는 표정이지만 오히려 너무 비슷해서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서로 얼굴을 가려버릴 정도로 ‘개인의 자리’라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도 답답하다.

소에게 코뚜레를 끼우는 이유는 코가 가장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뚜레에 묶인 줄을 잡아당기면 소는 저절로 따라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섯 원주민도 아마 누군가가 오륜을 조금만 당기면 모두 한꺼번에 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거대한 유행이나 담론의 물결은 사회를 통합시켜 주기도 하나, 정도를 넘는 순간부터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폭압이 된다는 사실을 시사해주는 작품이다.

◇캐릭터 대상

‘사랑이 무얼까’ 박현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콘센트와 플러그, 멀티탭을 캐릭터로 만들었다. 콘센트와 플러그는 서로 꼭 맞지 않으면 전기가 통하지 않고 짝을 이루지 않으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짝을 찾아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팬시용품으로 활용될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보다 콘센트와 플러그의 캐릭터처럼 ‘사연이 있는’ 경우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랑이 무얼까’의 캐릭터들은 조금 덜 귀엽더라도 캐릭터의 컨셉트 자체가 애니메이션으로 응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전기’는 사랑을 의미한다. 콘센트는 여성, 플러그는 남성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콘센트와 플러그가 만나면 “우리는 서로 전기가 통할까”라고 궁금해 하며 서로 달라붙는다. 그러나 잠시 뒤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맞지 않나 보다”하며 헤어지고, 새 짝을 찾아나선다.

콘센트와 플러그의 이야기에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이나 ‘전기가 통할 수 있는’ 짝을 계속 찾아나서는 사람의 애환도 엿보인다.

◇애니메이션 대상

‘강아지똥’ 아이타스카 스튜디오

어느 시골 돌담 밑에서 ‘태어난’ 강아지똥은 참새로부터 ‘더러운 똥’이라고 멸시받고 상심한다. 그런 그에게 ‘흙덩이’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니 너도 분명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것”이라고 위로한다.

강아지똥은 눈에 폭 싸인 채 겨울을 보낸다. 어느 봄날 그의 앞에 민들레가 솟아올라 “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라며 긴 이파리로 그를 부드럽게 감싼다.

귀여운 강아지똥 캐릭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사람의 손으로 빚은 캐릭터들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찍은 정지 화면을 모아 만든 클레이(찰흙) 애니메이션이다.

제작기간 10개월, 제작비 10억원이 들었으며 3월 도쿄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파일럿부문 최우수상 수상, 4월 이탈리아 ‘카툰스 온 더 베이’ 페스티벌 초청 상영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권오성 감독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고유의 따뜻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진 한국 동화를 찾다가 작가 권정생의 ‘강아지똥’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부문별 심사평▼

▽극화(고우영·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먼저 그림의 수준이 떨어지는 절반 가량의 작품을 솎아냈다. 남은 작품은 그림과 내용에 동일한 비중을 두는 것을 원칙으로 심사했다. 내용 심사에 다시 연출 30%, 소재 10%, 구성 10%의 세칙을 적용시켜 본선 진출작 17개 작품을 걸러냈다.

비밀 투표로 진행된 채점 과정에서 1·2등(대상과 우수상)이 소수점 이하까지도 동점이어서 난관에 부딪쳤다. 심사위원 전원이 채점지를 공개하고 비고란에 적은 사항까지 검토한 끝에 힘겹게 우열을 가려야 했다.

대상으로 결정한 유현호의 ‘Blow’는 시사성 있는 소재와 유리를 불어서 여성의 몸을 만드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컬러 그림은 정교한데다, 인체의 움직임을 천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카툰(박수동·전주대 교수)=올해는시사와 풍자에 치우친 나머지 카툰 본래의 유머를 상실한 작품이 의외로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상위권에는 수작이 많아 본선 진출작 41점을 고르는 것이 입상작 선정보다 훨씬 어려웠다.

5명의 심사위원은 대상 선정을 놓고 각각 두 사람씩 격론을 벌였으나 남은 한 위원이 블라디미르 카자네프스키의 ‘Vogue’를 더 높이 평가했다. 아쉽게 대상에서 밀려난 ‘이글루 만들기’(정성은)는 지구 온난화를 풍자했고, ‘민망’(오재진 임경옥)은 미륵불이 학사모를 쓰고 졸업식장에 나타나는 설정으로 ‘가장 한국 만화다운 멋’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려상으로는 관광객이 떠난 만리장성의 사스 기념 사진을 그린 ‘무제’(김고진)와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아이디어의 ‘해∼바라기’(유충호)를 선정했다.

▽캐릭터(이대영·계원조형예술대 교수)=올해 본선 진출작 및 수상작의 선발 기준은 ‘애니메이션을 고려한 디자인’이었다. 캐릭터는 화려한 외형에 그칠 게 아니라 관객의 마음 속에서 되살아나 그야말로 ‘캐릭터화’ 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캐릭터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와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양식(스타일)의 독창성과 완숙미를 눈여겨 봤다. 올해는 과거에 비해 캐릭터의 소재나 표현 방식이 훨씬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이는 인터넷 애니메이션의 발전과 보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콘텐츠 시대는 기술적으로 모든 장르의 예술과 문화를 통합하고 있어,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디자인 사이에 있는 장르의 벽도 희미해지는 추세다.

이런 의미에서 18개 본선 진출작 중 인터넷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은 ‘사랑이 뭘까(What's Love)’를 대상으로 결정했다.

▽애니메이션(고든 마틴·애니메이션 제작자)=출품작은 소재와 기교면에서 매우 다양해 수상작 선정이 쉽지 않았다. 먼저 스토리, 움직임, 시각적 우수성 등 ‘전통적인’ 범주를 기준으로 29개 본선 진출작을 뽑았다. 최종 심사에서는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낫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몇몇 작품은 기교면에서 감탄할 만했으나 전체적인 효과는 실망스러웠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이어야지 잡다한 기교의 모음이 돼서는 안 되며, 서사든 추상이든 모든 요소를 종합했을 때 드러나는 전체적인 효과로 평가돼야 한다.본선 진출작들이 유머·사회·생사(生死)의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학생들의 출품작이 전문가들의 작품과 필적할 만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수상작-수상자 명단▼

:극화:△대상=Blow(유현호) △우수상=절름발이 천사(김종연) △장려상=섬(김우현) 요괴의 집(김경일) △특별상=나도 사이보그였으면(김진형 이원달), 카오스모스(석금동), 알라의 별(강정민) △본선진출=탱크(이태안), 연두빛 비밀(이상원), 배바라기(김성준), 영혼조각가(양지선), 목포를 가다(조양호), 2300 오딧세이(김윤호 박찬우), Do Me A Favor(홍성지 홍성수), 입의 공격(남정훈), 솔로몬의 반지(장모춘), We Can't Stop(한사관)

:카툰: ▽대상=Vogue(Vladimir Kazanevsky) △우수상=민망(오재진 임경옥), 이글루 만들기(정성은) △장려상=무제(김고진), 해∼바라기(유충호) △본선진출=타이타닉(오세영), Vogue-Prevalent, Vogue(Yu Huachun), 전염병(김남엽), 로또넘버, 내가 곧 유행이다(김광희), 어느 수술실(이선제), 진화론?(이찬현), 유행 단두대(조성민), 피어싱(신상인), 패션리더(이길수), 산소(김인수), 무제(전재혁), 껍질 안 벗기(김종필), 무제(Oton-Anton Reisinger), Discovery(Michoel Tetievsici), 보양식, 사고(김동범), 무제(Ivan Pahernik), 무제(Stanko Zmazek), 알(김혜민), 무서운 자물쇠(성수미), 환경(김은지), 낚시(김홍복), 무제(Emilio Isca), 무제(2종·윤진수), 네잎클로버, 탈출(육일지), 신용카드(강태용), Oh My God!(손용석), 램프의 거인(김민태), 비즈니스(전상진), 무제(Nikola Listes), My Choice(Jin Hui), 신형문(고은경)

:캐릭터: △대상=사랑이 뭘까(What's Love·박현우) △우수상=이상야릇한 괴물들(Monsters·강문성) △장려상=Turandot(유정아), Kebi's(윤대훈 이달우) △본선진출=겸둥이 사자 어흥이(최지은), 해치(안상희), YAB(조주연), 건뽀&건미의 사랑이야기(박선혜 김영미 윤혜순 이상호 장월영 장혜련), 신비의 숲 만고라(이찬주), 치키더그 미니비니팜팜(황명진), Stress Man in the City(박륭규), The External World LUX(박애경), Nucleo(박형민 박준수 박지훈), 우챠 이야기(안영준), 요요요 이발관(장원), 4, 2, 3 & 1(김유), 뚱딴지와 친구들(황상욱), 요쿠쿠와치(오진경)

:애니메이션: △대상=강아지똥(아이타스카 스튜디오) △우수상=Tauro(Daenschel Matthias) △장려상=The Boxer(투바엔터테인먼트) △장려상·신인감독상=Turandot(유정아) △청소년 감독상=숨은색깔 찾기(김지인 김지수 이윤희 이나연 김동수 노영현) △단편부문상=큰일났다!(권미정) △미술상=꼭두각시(양선우) △캐릭터 디자인상·교육-어린이상=Bert(이문성) △음악-음향상·인터넷 애니메이션상=징기징고(스테이지1-‘Office’)(싸익스) △TV커미션드 필름=장기열전-삼성전자 또하나의 가족((주)이미지플러스) △본선진출=Somebody(안종혁), The Time Odyssey, M-TV 십장생(조성윤 조세헌), 인생(김준기), 만선(최민호), Make a Smile(서인경),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김준), 그날에…(조수진), 배낭을 맨 노인(박현경 김운기), The Paper Boy(이대희), Nest(황유선), 비나리(이건임), 길(곽호중 이동민), Harmony in Red(양현정), Aoki(Josef Briggs), 붉은나무(한남식)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운영-심사위원 명단▼

▽운영위원=신문수(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주완수(우리만화연대 회장) 이홍우(동아일보 편집위원) 조관제(부천만화정보센터 소장) 채윤경(계원조형대 교수) 양지혜(캐릭터플랜 대표) 이용배(계원조형대 교수) 김세훈(세종대 교수)

▽심사위원 △극화=고우영(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이두호(세종대 교수) 이진주(인덕대 교수) 신일숙(여성만화가협회 회장) 신영식(만화가) △카툰=박수동(전주대 교수) 마키노 게이치(교토 세이카대 교수) 김박(만화가) 김마정(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 사이로(청강문화산업대 교수) △캐릭터=이대영(계원조형예술대 교수) 문두표(툰타운21 대표) 오성윤(오돌또기 대표) △애니메이션=장동렬(한서대 교수) 임아론(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감독) 최승원(평택대 교수) 고든 마틴(애니메이션·영화 제작자) 후루가와 타쿠(도쿄공예대 교수) 이용배(계원조형예술대 교수) 김세훈(세종대 교수) 성백엽(마고21 이사)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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