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칼럼]커피와 '밥심'

  • 동아일보
  • 입력 2003년 9월 19일 18시 32분


젊어선 커피만 마시고도 잘만 일했는데 나이 들수록 ‘밥심’으로 일한다는 옛말이 절실해진다. 식당도 방금 솥에서 푼 고슬고슬한 밥을 주는 곳이 좋고 “밥은 먹었느냐”는 말이 지극한 관심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혼자 밥을 먹어 본 사람은 안다. 밥엔 어떤 정서가 담겨 있다는 것을. 갓 지은 밥은 그 따끈따끈함 때문에, 식어서 굳은 밥은 그 씹히지 않는 완고함 때문에 괜히 어머니 생각이 나게 하고, 내가 지금 밥값을 하고 있나 싶어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WTO가 농민을 죽였다” ▼
오늘 세계농민장이 치러지는 농민운동가 이경해씨의 죽음은 그래서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장 앞에서 “WTO가 우리 농민을 죽였다”며 자결한 고인은 수입 농산물 때문에 살 재간이 없다는 우리들의 시골 부모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다. 고향에 갈 때마다 이제 그만 쉬시라고 해도, 놀면 누가 밥 먹여 주느냐며 갈라진 손을 감추던 부모님이었다.
WTO는 우리 농민의 밥줄만 죄고 있는 게 아니다. 빈국이나 부국이나 고루 이득 보는 무역자유화의 틀을 만들자고 출범했지만 실제로는 강대국 챙기기에 주력하는 ‘위선의 기구’라 해야 옳다.
부자나라 농민들이 연 3180억달러의 농업보조금을 받아가며 넘쳐나게 농산물을 생산해도 꼼짝 못하면서, 가난한 나라 시장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제국주의적 압력을 빌려 활짝 열고는, 9억의 농투성이와는 경쟁도 안 되는 값싼 농산물을 퍼붓게 한 기구가 WTO다.
우리가 숭늉 대신 찾게 된 커피도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 재편에 한몫한다. 5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떨어진 원두 값에 우는 2500만 커피 농민은 미국 소비주의의 상징 스타벅스 커피숍의 일주일치 고객 수와 우습게도 일치한다. 한때 생산을 독려하던 선진국은 가격 폭락을 즐기며 커피향을 음미하는 눈치다.
이쯤 되면 WTO 협상결렬에 농민단체가 춤을 추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하지만 아무리 홉스의 룰이 지배한대도 WTO는 있는 게 낫다. WTO회의가 실패하자 기다렸다는 듯 선택적 보복적 쌍무협상에 나설 판인 미국의 기세가 이를 입증한다. 1개국 1표가 보장된 WTO 내 다자협상이 강자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양자협상보다는 그래도 유리하다. 글로벌 민주주의는 없다. WTO가 없어진다고 비정부기구(NGO)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선진국 그룹에도, 농산물수출 개발도상국 그룹에도 못 끼면서 개도국 지위만 구걸하다 양쪽에서 협공을 받게 된 우리나라다. 고인의 시신을 방패처럼 내세운대도 예정된 쌀 개방은 뒤집히지 않는다. 우리 빗장은 닫아건 채 남의 나라에 자동차를 팔 수도 없다. 한때 결사반대했던 쇠고기 수입이 가능해진 덕분에 LA갈비를 부담 없이 뜯을 수 있는 요즘이다. 쌀 농가가 10원 벌 때 국제시세보다 훨씬 비싼 그 쌀값 대느라 소비자 주머니에선 15.8원이 나간다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존 베긴 교수의 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민의 밥줄을 죄는 것은 WTO체제가 아니다. 세계화시대에 WTO를 벗어나는 건, 안타깝지만 불가능했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 이후 이런 실상을 정직하게 알리지 않고 10년이나 허송한 정부와 정치인들이야말로 따뜻한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그들은 농민단체의 표를 잃을까봐 우리와 같은 쌀 수입국인 일본까지 다하는 농업구조조정도 안 하고, 이제는 세계적 추세가 된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반대해 왔다.
▼늙은 부모님을 쉬시게 하라 ▼
‘농업은 생명산업이므로 보호해야 한다’는 구호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말처럼 지당하되, 실제론 공허하고도 무책임하다. 손바닥만 한 땅을 암만 파 봐야 남는 게 없는 부모님께 말로만 “쉬시라”는 게 불효인 것처럼 “계속 농사만 지으시라”는 것도 불효막심하다.
바쁜 맞벌이부부가 삼시 세 때 더운밥 차려드리는 효도는 더 이상 할 수 없듯, 농업도 세상변화에 맞춰 ‘보호’해야 한다. 늙은 부모님은 농사은퇴연금을 받으면서 젊어 못 논 삶을 누리게 하고, 손바닥만 한 땅은 경영 능력 있는 농가가 한데 모아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짓도록 하는 게 여러 사람 살리는 길이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잘 받아들이는 것이 글로벌시대를 사는 전략이 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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