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만화 ‘십자군 이야기-충격과 공포’ 1권의 저자 김태권씨(28·사진)는 “1000년 전 십자군을 통해 이라크 전쟁 등 오늘의 현실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학과 94학번인 그는 여러 대학의 학보에 만평을 그려온 재주꾼. 이 만화는 인터넷 뉴스사이트 ‘프레시안’에 연재 중이며 2005년까지 모두 6권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십자군 이야기’는 과거의 거울에 현실을 비추는 방식으로 그려져 요즘 상황을 비유하는 풍자와 유머가 넘친다. 예를 들어 십자군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말할 때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개전 당시 ‘우리 군대는 숭고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불신자(不信者)들을 일소하기 위해 선택받았다고 확신’했던 십자군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집단이었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2세의 원정계획에 따라 은자(隱者) 피에르의 인솔로 1차 십자군은 로마를 출발한다.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도 몰랐고 식량을 갖고 가지도 않았다. 독일 남부의 유대인 마을을 예루살렘으로 착각하기도 했고 식량 조달을 위해 헝가리 농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1차 십자군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순박하고 가난한 농노였어요. 원래 악인은 아니었죠. 하지만 독선과 집단적 광기에 휩싸인 그들은 학살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터키의 한 요새에 갇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들 역시 십자군 전쟁의 희생자였을 뿐이지요.”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십자군과 관련된 50여권의 국내외 서적을 작가가 직접 읽고 그렸다는 것. 그는 스티븐 런시만의 ‘십자군의 역사’, 조 올든부르그의 ‘십자군’ 등 원서와 자크 르 고프의 ‘서양중세문명’,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등 번역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1차 사료와 참고문헌 50여권을 섭렵했다. 등장인물도 당시 초상화 등을 참고해 비슷한 이미지로 그려냈다.
“‘십자군 전쟁으로 얻은 유일한 열매는 살구밖에 없다’는 뼈아픈 유머가 있습니다. 그 전쟁의 유일한 소득은 살구 열매가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것이죠. 십자군 전쟁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은 전쟁 없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폭력을 막기 위한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아요. 십자군의 광기가 사라질 때까지 무려 200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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