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교의 여학생한테서 e메일을 받았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독일어 선생님이 “옛날엔 독일이 곧 미국을 앞선다고 해서 독일어를 전공했다”더라며 중국도 같은 짝 날까봐 걱정했다. 중국이 뜨는 건 분명하니까 나 같으면 하겠다고 답장했다. 그런데 찜찜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랄 걸 싶어서다. 미국이 수십년은 최강대국 자리를 놓치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덧붙일 걸 그랬다. 요즘 미국 얘기를 하면 바보거나 매국노처럼 뵌다고 한다. 반면 중국 얘기는 하는 사람부터 신이 난다. 특히 젊은 층에선 중국 편향이 두드러진다. 빨리 중국 붐을 타지 않으면 손해볼 듯한 중국 숭배 분위기다. 이번 총선 당선자들도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나라로 미국보다 중국을 꼽았다. 김정일의 방중(訪中) 결과를 보니 역시 한중 외교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벙벙한 느낌을 줘서 ‘국민소득 2만달러’에 밀렸던 참여정부 국정목표 ‘동북아경제중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강한 중국과 더불어 동북아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책이 쏟아져 나왔다. 지배세력이 교체되면서 중국파가 주류로 떠오르는 조짐이다. 이웃나라 중시하고 외교 잘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미국 중심을 벗어나 중국 일본과 공동체를 만들자는 동북아론이 국익에 합당한지는 따져볼 문제다. 일부 동북아시대론의 중심엔 팍스아메리카나는 끝났다는 미국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있다. 그는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가 베트남전쟁과 함께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고 20여년 전부터 주장한 사람이다. 미국 우위가 여전하자 2년 전엔 “10년 내 끝난다. 우아하게 끝날지 아닐지가 문제일 뿐”이랬다.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슈퍼파워는 아직 막강하다. 영원한 건 없다는 역사법칙에 따라 언젠가 퇴장할 건 틀림없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세계정세로 볼 때 최소한 향후 20년은 미국 헤게모니가 불가피하다고 최근 저서 ‘선택’에서 지적했다. 테러와의 전쟁과 운명을 같이할 수도 있다. 중국의 시장경제가 미국을 제칠 시기를 골드만삭스에선 2040년으로 봤다. 그런데도 이미 자본주의 해체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 미국서도 소수파 진보적 이론으로 분류되는 월러스틴의 세계관에 맞춰 우리도 미국이 끝났다고 믿어서 무슨 득이 되는지 의문이다. 중국이 무섭게 성장한다지만 계속 팽창할지도 두고 봐야 한다. 앞으로 2년간 휴대전화 연간수요가 1억개인데 생산은 2억개를 넘을 만큼 공급 투자과잉 상태다. 엄청난 소득불균형에 높은 실업률, 부실금융과 인프라 미비, 부패와 불법 관행 때문에 언제 거품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부글거린다. 무엇보다도 눈여겨볼 점은 중국 역시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사실이다. 경제를 위해선 외국인투자와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임을 아는 중국이 미국을 적으로 돌릴 리가 없다. 6자회담 중재를 맡아 힘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것도 미국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한 것도 미국에서 대만 카드를 내놨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정일 방중 때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대만에 독립을 추구하지 말라고 경고한 걸 봐도 그렇다.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다 “북한이 핵무장하면 대만 일본 등 아시아에서 핵경쟁이 불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듯, 미국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데는 장사가 없다. 중국은 미국의 위협이 되기보다 아시아지역 맹주에 머물 거라는 전망도 이런 역학관계 때문이다. 결국 중국도 국익, 그것도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어떤 국가에도 미국과의 좋은 관계는 보탬이 되는 게 현실이다. 자주적 주체적 독립적 태도는 개인의 생활양식일 때 아름답다. 민족적 자부심이 유별난 우리나라가 자주외교 안보를 추구하고, 어린 학생부터 지배세력까지 미국 대신 중국만 바라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중국 숭배로까지 나타나는 오늘의 양상은 건강하지 않다. 중국어 공부도 필요하지만 영어 공부는 여전히 중요하다.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