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세대 차이를 얘기하지만 세대간에 기막히게 일치하는 대목이 한 가지 있다. 저마다 자기세대가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워낙 다이내믹한 나라인지라 격동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헤쳐 낸 경험으로 치자면 누구도 지지 않는다. 보릿고개와 6·25전쟁을 이겨낸 세대는 지난날을 글로 쓰면 대하소설감이란다. 청년실업 잔혹사와 대입제도 변천사로 인한 드라마도 그에 못지않다고 믿는 게 젊은 세대다. ▼모든 세대는 불행한 ‘낀 세대’▼ 부모가 생존해 있으면서 자식을 둔 모든 세대가 자신을 ‘낀 세대’라고 생각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부모와 함께 살든 안 살든, 어르신께 잘하든 못하든 마찬가지다. 자기세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닌 마지막 세대이자 더 이상 자식한테 효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고 한탄과 위로를 나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세상이지만 분명한 건 있다.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반면 출생률은 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번 시작하면 극단으로 달리는 한민족 특성상 고령화와 출산율저하 추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다. 노인이 늘고 일하는 사람은 줄면서 세금 내는 쪽보다 혜택 받아야 할 쪽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낀 세대가 살기엔 첩첩산중이 따로 없다. 겉으론 멀쩡해 뵈어도 알고 보면 부모 형편과 상관없이 갈수록 귀족적이 돼가는 왕자 공주 ‘모시기’와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하는 어른 ‘살피기’에 힘겨워하는 낀 세대 천지다. 엄밀히 따지면 자업자득이다. 아이들한테 공부만 잘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노래를 불러온 부모들이다. 덕분에 신접살림집이며 결혼 후 생활비까지 부모가 대줘야 한다고 믿는 괴물을 길러버렸다. 부모가 능력 있다면 축의금으로 몇억씩 걷어주는 게 대수일까마는 그렇지 못한 부모는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자식 봉양해야 할 세상이다. 이러다 덜컥 수입이 끊어져 버리면 긴긴 내 노후는 어찌될지 난감하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지금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부모 때만 해도 다들 자식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 거라고 믿었다. 그때보다 잘살게 된 나라에서 이만큼 제 밥벌이하고 있는 것도 부모세대가 뼈 빠지게 공부시켜준 덕택이었다. 반면 우리 현실은 8년째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맴돈다. 기업은 투자를 안 하고 청년은 취업을 못 한다. 국가경쟁력은 중국은 물론 인도보다 뒤떨어졌다. 그 와중에 성장이냐 분배냐, 보수냐 진보냐, 이젠 또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놓고 공허한 입씨름이다. 부자 부모를 못 만난 젊은층은 경제 살리기 촛불집회를 여는 게 직장구하기보다 쉬울 판이다. 자식에게 기댈 수 없다면 나라가 효자노릇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심리를 간파한 정치권에선 총선 전 그랬듯 어버이날을 맞아 뒤질세라 노인정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수천억원대 재원마련이 막연하다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에서도 사회복지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경제활력을 앗아간다며 연금혜택을 줄이고 각자 준비하라는 형편이다. 출산율과 함께 노동인구가 줄면 경제성장이 힘들어질 텐데 나 편히 살자고 자식 등골 미리 빼먹는 사회복지는 위험하다. ▼자식으로부터 독립선언을▼ 안됐지만 돈이 효자, 건강이 효녀다. 내 노후는 내가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바꾸지 않으면 43년 후 바닥난다는 국민연금만 믿을 게 아니라 노후자금 미리 모으고 건강도 다지는 게 자식 돕는 길이다. 단, 그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식과의 심리적 이유(離乳)다.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은 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도리지만 자식에겐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자라면서 이쁜 짓 하는 것으로 아이들은 부모에게 평생 할 도리 다 했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해 취미삼아 ‘자식 비즈니스’에 매달리면 모르되, 아니라면 자식한테 퍼주지 말고 내 몫 악착같이 챙겨둬야 나중에 싫은 소리 듣지 않는다. 부모도 자식 속 썩이지 않고 스스로 서야 제대로 효도 받을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