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은 혜진이 어머니 문희정(33)씨가, 다른 한 통은 혜진이네의 이웃주민 황미금(34)씨가 보낸 편지였다.
문씨는 편지에서 “희망은 고통 뒤에 더 크게 찾아오는 것 같다”며 “평생을 두고두고 살아도 갚지 못할 큰사랑을 기억하면서 혜진이도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고운 아이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이웃 황미금씨는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마을은 온통 눈물바다 였다”면서 “도와주신 분들께서 저희 어란리를 찾아주면 회 대접을 해드리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나타냈다.
혜진이네를 도와준 네티즌들의 성금은 22일 오전 현재 4686만7천원이 모아졌다.
문씨는 “너무 고맙고 귀한 돈이어서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며 “밀린 치료비는 물론이고 앞으로 석 달 정도의 치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의 온정이 이어지면서 공중파 방송사 두 곳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왔지만 아버지 김성국(36)씨는 “이미 분에 넘치는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출연 제의를 고사했다.
혜진이네 성금 모금을 통해 네티즌들은 "아직 식지 않은 세상인심의 따뜻한 체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동아닷컴은 도움을 주신 네티즌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그 고마움의 인사를 두 사람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혜진이 엄마의 편지
아이 아빠와 저, 그리고 우리 진선이, 혜진이 네 식구는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된장국 한 그릇을 놓고 마주앉아도 웃음꽃이 피는 단란한 가족이었습니다.
새벽 3~4시면 컴컴한 바닷가에 나가 주낙을 드리우며 바쁘게 살았지만 희망이란 꿈과 미래를 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혜진이가 전신 40%의 3도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고 순간, 불로 인해 불행을 겪었던 친정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교도관이셨던 저희 친정아버지도 제가 4살 때 근무 중에 화재가 나서 순직 하셨습니다.
저의 언니도 어렸을 때 목과 얼굴 볼에 화상을 입어 고생을 많이 했었지요.
저는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늘이 저희 가족에게 씻지 못할 굴레라도 주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생활이었을 뿐인데요.
사고 이후 며칠 동안 우리 부부는 울다 지쳐 쓰러진 것이 몇 차례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혜진이 한테 온 정성을 쏟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힘겨운 생활 속에서 가여운 우리 딸 혜진이를 살릴 수 있는 현실에 벽은 너무 두터웠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도 삶을 짓눌렀지만 더 크게 짓눌렸던 가난이라는 굴레. 가난한 고기잡이 남편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현실.
하지만 이 세상 사랑은 참 깊고 따뜻했습니다.
마을 분들께서는 차를 팔아 치료비를 만들어 저희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뜨거운 성원이 있었습니다.
희망은 고통 뒤에 더 크게 찾아오나 봅니다.
얼마 전까지 내리던 장맛비는 온통 눈물처럼 보이더니, 오늘은 병실 창문 밖으로 밝고 환한 햇살이 쏟아져 내립니다.
저희 부부, 다시는 울지 말자고 다짐을 했지만 다시 한번 쏟아지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도움을 보며, 저는 혼자 병실에 앉아서 혜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습니다.
절망의 터널을 빠져 나온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혜진이는 여러분이 보내주신 온정의 손길로 다시 태어났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더 큰 사랑을 세상에 베푸는 고운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평생을 두고두고 살아도 갚지 못할 큰사랑을 기억하며 저희 부부도 아름다운 생을 살아가겠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의 인대 수술과 신경의 수술이 남아있지만 여러분의 정성으로 오뚝이처럼 우뚝 선 혜진이가 될 것입니다.
저희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동아닷컴 관계자 여러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서울의 한 병실에서 혜진 엄마 올림. |
●혜진이네 이웃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서 사는 황미금이라고 합니다.
우리 혜진이네 가족의 이웃입니다.
여러분들께 고마움의 인사를 어떻게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움주시고 마음써주신 여러분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아닷컴에 기사가 실리고, 혜진 아빠 통장에 이름모를 분들의 성금이 모아지기 시작할 때 우리 동네는 온통 눈물 바다였습니다.
도와주신 여러분들이 고마워서 울고, 혜진이네가 짠해서 또 울었습니다.
우리 동네 모든 분들도 여러분에 따뜻한 정성에 고마워하십니다.
우리 마을 이장님께서는 “한 사람이 스무 명을 죽이는 세상에서 아직도 우리 혜진이를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신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노인정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도 인쇄를 해서 기사를 보여드렸습니다. 어르신들은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고 연신 눈물을 닦아내시면서 인정있는 세상이라고 하셨답니다.
올해 2월. 우리 혜진이 가족에게는 악마와 같은 달이었습니다.
화상을 입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는 혜진이 엄마를 보면서도 이렇게 심한 화상인지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해남 병원에서도 포기를 하고 전남대학교 병원에서도 우리 혜진이를 포기해서 다시 서울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저는 사고 다음날 서울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붕대로 온몸을 감고 있는 혜진이를 보면서 우리가 혜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다시 한번 울었습니다.
그리고 한달 두달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마어마한 치료비 앞에서 넋을 놓았던 혜진이 가족에게 여러분의 크나큰 정성이 다시 희망이라는 불을 지펴 주셨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작은 돈이긴 하지만 저희도 혜진이를 돕고자 일일찻집을 했었답니다.
찻집에 들르신 분들은 천원짜리를 내고 가시다가도 혜진이 이야기를 듣고는 되돌아서서 만원짜리 지폐를 다시 넣고 가시곤 했습니다.
아예 봉투를 준비해주신 분들도 계셨고 속 쓰린 커피를 열잔 이상 마셔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동네 할아버지들께서도 허리춤의 쌈짓돈을 꺼내 도와주셨습니다.
저희 마을사람들은 이달 23일도 저희 마을의 송호리 해수욕장에서 일일 찻집을 열려고 준비 중입니다.
저희 모두 엄마이자 아빠이기에 혜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 일이기도 합니다.
주위에 어른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불이 붙어 뜨거워 뛰기만 했던 우리의 딸 혜진이, ‘왜 우리 가족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울다 울다 지쳐서 쓰러진 혜진 엄마의 모습이 언제쯤이나 우리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까요?
하지만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다시 환한 미소를 되찾은 우리 혜진이 가족을 보면서 우리 마을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여러분, 이번 휴가철에 저희 어란리로 오세요. 하모(갯장어) 회 대접해 드릴께요. 진심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날마다 좋은날 되시고... 여러분 모두 복 많이많이 받으실 겁니다.
전남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서 혜진이 이웃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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