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우리, 범죄의 재구성’ 전문

  • 입력 2004년 7월 23일 11시 35분


다음은 김형민 PD의 ‘그들과 우리, 범죄의 재구성’ 전문이다.

▽‘그들과 우리, 범죄의 재구성’ ▽

유영철이라는 살인마가 저지른 엽기적인, 아니 그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끔찍한 살인 행각에 놀란 가슴이 아직 진정이 안됩니다. 언젠가의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한 말처럼 '그 안에 악마가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그 범행은 인간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인간 이하는 아닐 겁니다. 짐승들은 그런 살육 안하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이 TV 속의 사건만으로 비쳐지지 않습니다. 요즘 기획 중인 프로그램 탓에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유영철 만큼은 아니지만 죽어 마땅하다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재소자들과 만났거나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제가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지가 무척 궁금해지시겠지요. 쉽게 말하면 교도소판 'TV는 사랑을 싣고'입니다. 교도소라는 높은 담장, 특수한 지역에 들어가 범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인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사연이 있는 이들에게 그 만남의 기회를 갖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지요. 그 대상은 오래도록 보지 못한 가족일 수도 있고, 옛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자기가 죽이거나 해를 입힌 이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벌써부터 '그런 놈들을 방송에 데려다 놓고 뭘 하겠다는 거냐?'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분이 계실 겁니다. 당연합니다. 그 프로그램 기획안을 우리가 내놨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펄펄 뛰었고 '방송에서 죄수들을 보여 주는 것 자체가 미화이며 시청자들이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제동을 걸었으니까요. 그리고 어찌 되었든 죄를 지은 사람이 방송에 출연하는 자체가 그에 대한 미화이며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이 프로그램은 기획서 단계에서 휴지통으로 들어갈 뻔 했지만 어찌어찌 밀고 당기고 끝에 결국 제작에 들어갔고 저는 전국의 교도소를 누비며 각 교도소에서 추천(?)한 수용자 (이것이 공식 용어랍니다)들을 만났고 또 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또 한 번 전국을 누벼야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저도 아마 다른 PD가 이런 프로그램을 하겠노라고 뻗대고 나섰다면 가장 완강하게 이 프로그램에 반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자신 죄수들 (수용자라는 말은 아무리 써도 입에 붙질 않습디다)을 만난다는 자체가 껄끄러운데 그들을 주인공으로 화면에 등장시켜 시청자들의 안방까지 배달한다는 것이 어찌 개운할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최대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기로 했습니다. PD는 출연자에게 최대한의 애정을 퍼부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애정을 가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죄수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불행했던 어린 시절 탓에, 친구 잘 못 둔 탓에, 맘 한 번 잘못 먹은 탓에 그 세월을 창살 안에서 보냈지만 그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며, '실수를 저지른 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그들 역시 제 기대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소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고 말입니다. 그러나, 대화를 끝내고 서울에 올라와 내가 방금 만난 그 사람의 범죄 사실을 문서로 보았을 때 저는 또 한 번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개새끼가 있나..... 이런 나쁜 새끼가 있나..... 이런 천하의 쳐죽일 놈이 있나. 정말 나쁜 놈들이었습니다. 읽어 내리던 중 문서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지요. 마누라를 죽인 뒤 토막낸 놈이 장모님한테 용서를 빌고 싶어? 이런 개새끼...... 어 이년은 한 번 찌른 다음 중환자실로 쳐들어가서 또 찔렀어? 이건 또 뭐야. 강도 하던 중 사람을 열 일 곱번 찔러?’

우리 팀이 회의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피해 갔습니다. 입에서 나오느니 토막이요 시체 유기에 보험 살인에 강도 강간이니 깔끔한 사무실의 단정한 사원들에게는 십리는 돌아가고 싶은 음침한 회의였겠지요. 저희도 인생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懷疑)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왜 이 짓을 해야 하는가. 그냥 감옥에 처박아 뒀다가 죄값 치르고 나오면 될 놈들을 두고 말입니다.

그때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 결국은 다 사회로 돌아올 사람들이다. 다 우리 곁으로 올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랬습니다. 사실 그게 우리의 기획 의도였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결국 그 형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갈 사람들, 그 사람에게 만남과 화해와 용서의 장을 열어 줌으로써 그 사람 스스로 가둔 마음 속의 감옥에서 석방시켜 주고자 하는 것이었지요. 그 일을 하고자 했던 우리조차 지레 그들을 외면해 버리면 어찌 하나 싶은 자책감도 들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재소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 또한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벽은 상상외로 높았습니다.

한때 같은 조폭 조직에 있었으나 한 명은 마음 잡고 목사가 되었고 한 명은 살인자로 감옥에 있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살인범 친구가 목사를 만나고 싶다고 신청을 했지요. 하지만 목사님은 너무나 간단히 거절하더군요. "자기 교회 성도가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길 잃은 어린 양을 인도해야 할 목사가 이럴 수 있나 싶었지만 목사님은 완강했습니다. 결국 교회 성도는 핑계고, 자신이 그를 만나기 싫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더군요.

또 어떤 수용자는 불운한 청소년 시절 정을 듬뿍 주었던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저희는 이 섭외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 수용자의 이름을 제꺽 떠올리며 기뻐하던 선생님은 그가 감옥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입장을 180도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목사가 된 친구의 거절, 그리고 불행한 제자의 손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선생님...... 한동안 또 우리는 그들에게 열이 받았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하물며 목사가...... 그리고 선생님이..... 어찌 그렇게 매정들 할 수 있으며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할 수 있느냐고 성토대회를 열었지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교도소 관계자들까지 대체 어느 학교 선생님이냐면서 분통을 터뜨렸지요. 그러나 그 분노의 역류는 또 한 마디의 암초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어이 PD들. 나중에 너희들이 찍은 수용자가 출소해서 술 한 잔 합시다. 그러면 맘 편하게 나갈래?"

"................"

그 말에 자신있게 예스!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물며 아무리 교사고 목사고간에 끔찍한 범죄자들의 과거의 친구요 스승이었다는 이유로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엮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특히 저는 프로그램 제작 기간 내내 이 엇갈리는 감정과 시선의 틈바구니에서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결국 우리 곁으로 돌아올 사람들임을 모르지 않으며, 그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그들 인생에 플러스가 된다는 믿음이 있지만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의 마음의 벽과 사람들의 마음의 벽에 맨머리로 헤딩해야 하는 그 황당함 말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가 수행해야 했던 가장 큰 일 중 하나는 그 왔다리갔다리의 간극을 스스로 좁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수용자의 참회를 믿고, 그의 새로운 인생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는 저 자신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스물 둘에 무기징역을 받고 감형이 되어 이제 출 소일을 4년 앞둔 그에게 이번 무대가 그의 새 출발에 대한 결심에 플러스가 되리라 스스로에게 확신을 부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작업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그들은 '나쁜 놈'들이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래 '나쁜 종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교도소 안에서 법이 지정한 수형 생활을 마치고 교도소 문 밖으로 나와 두부를 먹은 다음에도 그들이 '나쁜놈'으로 남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 죄 지은 놈이 또 못짓겠냐는 경계가 누구나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는 이해의 눈길을 짓누르게 된다면 그때는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교도관의 이야기는 그래서 오싹하게 다가왔었습니다.

"사회 나가 봐요. 누가 살인 무기수 출신한테 일 주겠어? 나이 마흔에 마누라 없지, 친구도 없지, 변변한 일자리도 없지, 그냥 자기를 이렇게 만든 세상이 미워 보이는 거야. 그러다보면 그 뭐냐 서울에 목요일날 되면 살인난다매? 그러고 다니게 되는 거야."

살인마 유영철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정말 쳐 죽일 놈이고, 개인적으로 사형 폐지 쪽에 손을 살그머니 들다가도 더럭 사형 절대 지지쪽으로 변신하고 싶을만큼 극악한 죄인이기는 합니다 그 정도의 불우한 삶을 살면서도 아름답게 삶을 일궈 가는 사람도 많고, 오히려 그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도 꿋꿋이 남에게 해 입히지 않고 살아가는데, 두 자리 수의 사람을 아무런 느낌 없이 죽이고 도륙 낸 그가 어찌 죽음을 면키를 바라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 인간을 미친놈으로, 악마의 씨로, 인간말종으로 치부하며 퍼붓는 욕설 속에서 방송 출연 예상 재소자들의 판결문을 보고 흥분하던 제 얼굴을 읽으며 착잡한 마음이 됩니다. 그 하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나, 결국 또 다른 그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들을 감싸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 2의 유영철을 보아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목사가 된 친구에게도, 자기가 아무리 험한 처지에 있어도 내 제자라고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았던 선생님에게도 외면당한다면 그들의 좌절이 어떠할지 짐작이 가기 때문입니다.

이번 유영철 사건으로 연쇄살인마 랭킹에서 한 단계 밀려난 그 옛날의 살인마 김대두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찌 보면 아이는 죽이지 않았던 유영철보다 더한 살인마였습니다.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3개월된 아기까지 죽였으니까요. 그는 초등학교 졸업에 전과 2범이었고 그 어느 곳에서도 그를 받아 주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 무력감은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로 이어졌고, 17명의 목숨이 그 증오 앞에 이슬로 변했습니다. 그는 교수대 앞에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전과자들에게 갱생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

살인자들, 범죄자들이 악의 씨이며, 처단해야 할 것들이며, 똑같은 방식으로 쳐 죽여야 한는 생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렇게 분노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또 다른 이유를 외면하는 자기도피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살인마 유영철이 살인을 멈추었던 그 잠깐, 그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지요. 하지만 '전과자'라는 사실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결별의 이유가 되었고, 살인마는 결국 사회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습니다. 그 여자분을 비난하고자 함은 절대로 아니며, 저는 그 여자분께 국한된 이야기를 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단지 유영철이 별 열 네 개를 그의 어깨에 다는 동안,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했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지 그 범죄를 '재구성'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입니다. 1976년 김대두가 죽은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말입니다.

자.... 머리아픈 프로그램의 PD 입장으로 돌아가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기억도 안나는 친구, 중학교 때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언젠가 시골에서 전학온 그 아이는 자기가 반 친구들에게 이유없는 구타를 당할 때 당신이 용감하게 나서서 막아 주고, 라면 한 그릇을 사 줬던 기억을 또렷이 합니다. 그것은 그 아이의 학창 시절 유일하게 온기를 느끼게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뒤에도 그 아이를 많이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를 기억조차 못합니다. 당신에게 친구들은 많았고 그럴 일도 많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아이는 현재 잔인한 살인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째 복역 중입니다. 지금 그가 당신에게 면회를 신청합니다. 흔쾌히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를 친구로서 만나 주시겠습니까? 그와 인연이 닿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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