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성적(性的) 패러디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데 이어,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34)씨에 비유한 패러디가 인터넷에 떠돌아 시끄럽다.
한나라당 '좋은나라닷컴'에도 올랐다가 내려진 노 대통령 패러디는 수갑찬 유씨의 사진에 노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뒤 ‘희대의 민생파탄범 전격인터뷰!’라는 제목을 붙여 만들었다.
이 패러디는 순식간에 언론사와 포털사이트, 정당의 인터넷 게시판으로 퍼졌고 ‘반盧 vs 친盧’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유영철, 노통을 닮았나?"▽
유영철 사건이 터져 나온 뒤 가장 먼저 논란의 소재를 제공한 것은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었다.
“노통을 닮았나? 살인범죄 저지르고 책임전가라니."(이여사) "가진자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살인마와 노무현의 코드가 같군요."(mistralwind) "유영철과 노무현의 공통점은 남에게 씻지못할 피해를 준다, 온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마지막이 비참하다는 것"(나비)
이같은 글은 유씨가 체포된 직후부터 일부 보수 진영 게시판에서 떠돌았다.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홈페이지나 보수성향의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은 이들 글을 아예 홈페이지 첫 화면에 선별, 편집해 올렸다.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는 "유영철씨가 갖고 있는 '가진 자'와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기득권 세력에 대한 대통령의 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서 (독립신문) 첫 페이지에 올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병섭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단순한 풍자의 수준을 넘어서 정치적인 의도가 뻔히 보이는 음해성 글들” 이라며 “게시판에 떠도는 글들을 홈페이지 첫 화면으로 편집해서 올렸다면 언론.출판 행위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게시판 글 논란은 '유영철-노무현 패러디'사진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대통령 모독' 논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네티즌, “제대로 된 패러디” vs “너무 심했다”▽
대통령 패러디가 인터넷에 오르자 네티즌들은 “대통령은 보고 반성하라”, “국가원수를 모독하지 말라”는 등 크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시의 적절한 패러디다”(tzki,), “틀린 말 하나 없네요... 이거라도 보고 있으니 그나마 좀 풀리네...”(등골 빠진 서민), "대통령도 이거보고 정신 좀 차려라.”(제대로)
“패러디도 할 것 안할 것 구분해라. 도를 넘어도 한창 넘었다”(어이), “패러디라도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패러디와 모독은 다르다”(이경성)
▽“패러디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
전문가들은 패러디가 젊은 네티즌의 적극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며, 표현의 자유세대인 이들의 고유 언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과)는 “패러디는 네티즌의 의사표현 통로로 적극적인 정치·사회 참여의 한 행태”라며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특성상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패러디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라고 말했다.
네티즌들 역시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으로, 보고 즐기면 그만 이라는 의견이 적지않다.
▽패러디 잇단 법적 제재▽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패러디는 최근 잇달아 법적 소송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대통령을 살인범에까지 비유하는 패러디가 나오면서 법적 논란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지난 총선때 모 정당 대표를 비유해 여러 개의 건전지를 이어도 밝기가 변함없다는 ‘병렬건전지' 패러디 등 4건을 제작한 대학생이 경찰에 고발당했다.
이 대학생은 “정치인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하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패러디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수긍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또 지난 22일에는 영화 '스파이더맨' 포스터의 얼굴 부분에 모 정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뒤, 이마에 일장기를 그려 넣고 아랫부분에 '태생적 친일파이면서, 친일청산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글을 넣어 패러디를 만든 대학생 신모(26)씨가 법원으로부터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특정 정당을 비판해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으로 보여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면서 “국민의 정치참여를 유도하려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신씨는 “창작의 자유를 고려하지 않은 법적용”이라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행 선거법에 대해 헌법소원 및 항소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외국은 비교적 관대▽
패러디 문화가 이미 정착된 선진 외국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평가가 비교적 관대하다.
미국의 경우 TV코미디 프로에서 연일 대통령과 정치인을 바보로 풍자하는 내용이 방영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 유명 가수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던진 공을 달려가 물고 오는 블레어 영국 수상’을 풍자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부시 대통령이 블레어 수상의 침실에 들어와 부부 사이에 끼어드는 장면도 나온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상당히 심각할 것 같은 이 같은 내용도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고 있다.
▽“패러디를 만드는 것보다는 악용이 문제”▽
전문가들은 ‘공인’이라는 특수신분에 있으면 패러디 대상이 되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되나, 오히려 패러디 자체 보다는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패러디 보다는 이것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패러디가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라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
강원택 교수는 “패러디가 개인적인 영역에서 떠돌아다닐 때는 문제가 없지만 청와대와 정당 등 공식적인 기관에서 사용된다면 문제”라며 “없는 사실을 악의적으로 만들어 유포시킨다거나 선거 등 정치에 악용하지 않는다면, 패러디를 제재하는 것은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모 변호사는 “공인의 경우는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는 비판이 일반화됐지만, 반대 측면으로 볼 때 더욱 이미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중적 성격이 있다”면서 “네티즌들은 인터넷의 익명성 때문에 강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이 더욱 심각하고 법적 책임도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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