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수심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중"

  • 입력 2004년 8월 6일 15시 11분


“민주당 당사가 아직도 있나요? 당사도 있고... 괜찮네.”

5일 아침, ‘민주당에 가자’며 올라탄 택시 안에서 개인택시 기사 이 모씨는 이렇게 물었다. 광주가 고향이라는 이씨는 “민주당에 대한 관심을 접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의도에 민주당사는 없다. 건물 한 켠에 전세살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건물 바깥의 그 흔한 플래카드는 물론, 1층 로비의 입주자 안내 표지판에도 민주당의 이름은 없었다. 불과 넉 달 전만해도 민주당사 앞에는 호위 전경들이 즐비했었다.

당 기자실에 들어가니 또 다시 격세지감. 기자실 부스 네 개, 그러나 책상 위엔 집기만 쌓여있을 뿐 기자는 한 명도 없다.

당력(黨歷) 50년, 의원 9석, 지지율 3%대의 원내 4당 민주당의 현 주소다.

민주당은 지금 어느 자리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 속내를 들여다봤다.

"텔레비전, 우쩐 일인가"

“어, 텔레비전도 왔네. 우쩐 일인가.”

지난달 28일 아침, 당 회의실에 들어서던 한화갑 대표는 취재 나온 한 방송국 카메라 기자를 보자 반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道)지부장 임명이 끝난 뒤 열린 첫 중앙위원회 회의였다.

한 대표의 이런 반응에는 언론 취재에 목마른 민주당의 심정이 그대로 배어있다.

실제로 국회가 개원한 6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두 달 동안 중앙일간지에 실린 민주당 기사는 448건에 불과하다 (카인즈www.kinds.or.kr 검색).

같은 기간 우리당 4275건, 한나라당 3628건의 기사 건수와 비교해보면 터무니없이 낮은 숫자다.

의석수가 1석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민주노동당의 기사 건수도 같은 기간 1090건이고 보면 민주당으로선 억울할 법도 하다.

한 당직자는 이같은 차이에 대해 “처음 원내에 진출한 민노당이 다른 당들과 확연한 차별성을 보이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라며 “단순 의석수로 비교할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우리도 그만큼 언론 유인책을 만들어내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메뚜기 대변인이에요.”

하지만, 단순한 언론 유인책을 탓할 문제만은 아닌 듯 하다. 민주당에 대한 언론의 관심 자체가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

마침, 5일 아침에는 김관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한화갑 대표를 예방했다.

광주지역에 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국방부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20분 남짓한 면담이 끝나자마자 장전형 대변인은 통신사에 전화부터 돌렸다.

“아, ○기자. 방금 당에 합참 본부장이 다녀갔거든. 기사 하나 써주셔야겠네. 단독으로...”

전화를 끊고 난 장 대변인은 “나는 핸드폰 대변인, 메뚜기 대변인이에요”이라고 털어놨다.

상주 기자 없이 핸드폰으로 홍보를 하고, 당 브리핑이 없으니 이슈가 있는 곳 마다 뛰어다녀야 하는 신세를 푸념하는 말이었다.

장 대변인의 ‘핸드폰 브리핑’에도 불구하고 이 날 기사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연합뉴스에 올랐다.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에는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언론과의 관계만을 놓고보면, 민주당의 현주소는 메아리가 울리지 않는 ‘골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잖아요.”

줄어들은 건 민주당 관련기사 뿐만이 아니다. 180석에 달하던 기자실 부스도 4개로 줄었다.

건물 7개 층을 통틀어 사용하던 사무실 면적도 이제는 7층 한 켠에 160평으로 줄었다.

중앙당 당직자는 24명뿐이다. 총선 직후, 일괄 사표를 제출한 150명 전체 당직자 가운데 사표가 반려된 사람들이다.

그나마 이만큼 살림살이를 줄이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민주당은 밀려있던 옛 당사 임대료 50억원을 간신히 ‘해결’한 뒤에야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당을 떠난 당직자들의 퇴직금 20억원도 골칫거리.

이같은 재정난 때문에 최근 여의도 증권가의 이른바 ‘찌라시’(정보지)에는 ‘민주당은 당 파산을 앞둔 시한부정당’이라는 내용이 오르기도 했다.

“에이, 아무렴요. 퇴직금 문제까지 다 해결됐어요.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지 않습니까.”

또 다른 당직자 B씨는 세간의 풍문을 전하자 이렇게 말했다.

“수심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중”

재정난과 무관심으로 덧칠돼있는 민주당이지만, 5일 아침 '지역현안'을 들고 찾아온 합참 작전본부장의 방문 자체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직 광주 지역에서 만큼은 민주당의 입김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실제로 이 날 면담에서 “광주, 전남지역주민이 반대하는 일을 중앙에서 대변하는 것이 민주당의 사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이 재기를 노리는 기반도 역시 텃밭 광주.전남.

장전형 대변인의 얘기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승, 아니 전승을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약의 발판은 마련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내년 4월 재.보선을 기점으로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민주당은 8월부터 진성당원 10만명 모으기에 나섰다. 16개 시.도당 위원장도 얼마 전에 정비했다.

재도약을 꿈꾸는 민주당의 현재 심경을 '수영선수'에 빗댄 장 대변인의 ‘수심론(水深論)’이 흥미롭다.

“우리는 지금 수심 50cm 정도에 서 있어요. 지금 여기서 수영하려고 하면 무릎이 까지거든요. 1m50cm까지는 물이 고일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지도부 생각도 그렇고...체력을 비축해두자는 겁니다.

수심이 그 정도쯤 되면 자유형도 하고, 배영도 하고... 수영에 또 무슨 형이 있습니까, 아무튼 어떤 거든 자신 있게 헤엄쳐 볼 겁니다.”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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