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열풍…그런데 어디서 타지?

  • 입력 2004년 8월 14일 11시 48분


“2007년 자전거 교통수송 분담률 5%.”

서울시가 내놓은 ‘야심찬 계획’은 실현될 수 있을까.

21세기 대한민국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자전거가 질주한다.

교통체증, 대기오염 방지, 고유가, 웰빙….

이유는 각각이지만 결론은 하나, 자전거다.

자전거 판매는 3년 전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업체인 삼천리 자전거는 2002년 한 해에만 67만대의 자전거를 판매했다.

한국 자전거공업협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전거 보유대수는 800만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 들도 자전거의 가치에 주목했다.

도심 교통난 해소, 대기오염 방지, 기름값 절약 같은 효과 외에도 자전거 도로 개설을 통해 ‘시민들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 했다’는 생색내기 까지 기대할 수 있었던 것.

잘 하면 ‘히트’를 칠 수 있다고 판단한 지자체들은 앞 다퉈 자전거 도로 확충 계획을 발표하고 자전거 타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서울시는 올 4월 “포화상태 인 서울의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라며 “서울 외곽 및 경기도 지역과 도심을 잇는 자전거 도로망을 대거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경기도 분당에서 탄천을 거쳐 세종로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

서울 전 지역에서 자전거를 이용해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자전거도로망이 갖춰지는 2007년에는 현재 2.4% 수준인 자전거 교통수송 분담률을 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

세계의 자전거 보유현황(BICYCLE OWNERSHIP)
국가명 country연도보유대수
(단위:만대)
보유율
(인구/대수)
한국 KOREA19966506.9
일본 JAPAN20028,5491.5
중국 CHINA200148,8132.6
인도네시아 INDONESIA19962,0009.6
인도 INDIA19903,08024.4
프랑스 FRANCE20002,3002.6
벨기에 BELGIUM19955201.9
네덜란드 NETHERLANDS20021,7800.9
독일 GERMANY20026,5001.3
이탈리아 ITALY19962,6502.2
영국 UNITED KINGDOM19982,3002.7
덴마크 DENMARK 19954501.1
스페인 SPAIN19956955.7
노르웨이 NORWAY19953001.4
스웨덴 SWEDIN19956001.4
핀란드 FINLAND19953251.5
스위스 SWITZERLANDS20013801.9
오스트리아 AUSTRIA20023302.4
러시아 RUSSIA19874,0007.0
헝가리 HUNGARY19953503.1
루마니아 RUMANIA19995504.1
미국 U.S.A199812,0002.6
캐나다 CANADA19981,2502.7
멕시코 MEXICO199580013.2
브라질 BRAZIL19964,0004.0
※자료출처:일본자전거산업진흥협회

인천시는 2010년 까지 현재의 3배 수준인 700km까지 자전거도로를 늘리기로 했고 부산시도 2007년까지 120km를 연장해 330km의 자전거 도로를 개설 할 예정이다.

매주 토요일을 자전거 타는 날로 지정한 청주시는 2010년 까지 총 55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시내 전지역을 연결하는 571km의 자전거 도로망을 구축 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자전거 시범도로 7곳을 지정 운영중이고 경주시도 2008년 까지 문화유적지를 연결하는 약 110km의 자전거 도로를 개설한다.

그런데 이런 지자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서울에 사는 MTB 마니아 홍성우(28)씨는 ‘자동차의 위협, 보행자들의 따가운 시선, 횡단보도 없는 광활한 교차로, 수시로 끊어진 도로…’ 등 자전거 타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열거한 뒤 “2007년에도 서울 도심에서 자전거 타기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차가 아닌 운동·놀이기구로 대하는 정부 나 지자체의 ‘이중적인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청사진’도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왜 이런 비판이 나올까.

자전거와 관련된 법은 도로교통법과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 두 가지.

도로교통법 제2조에 따르면 자전거(自轉車)는 차(車)로 분류된다. 당연히 자전거를 이용할 때는 차에 준해 모든 규칙을 지켜야 한다. 법규위반 시에는 그에 상응한 범칙금을 납부해야 한다.

법대로 하면 인도에 세워둔 자전거는 ‘불법주차’이고 자전거의 인도통행도 ‘불법’이다.

그런데 실생활에서는 어떤가. 자전거는 차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전거도로가 없는 인도 위를 통행하는 자전거를 제지하는 교통경찰관을 보기 힘들다. 반면 법을 지키기 위해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에서 차도로 통행하는 자전거를 안전 등의 이유를 들어 인도로 통행 하도록 유도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다.

‘자전거자동차겸용도로’도 이중적인 사고의 산물이라는 비판. 자전거를 포함해 차로 정의되는 모든 것은 차로를 통행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무의미한 ‘자전거자동차겸용도로’를 만든 것은 법적으로는 자전거를 차로 규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차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보도가 넓고 차도가 좁은 도심에서도 자전거 전용도로는 차도상에 지정된다.(영국런던)

반면 일본이나 유럽 같은 교통선진국에서는 법적으로든 실생활에서든 자전거는 ‘차’로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전거는 ‘차’이기 때문에 ‘차로’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통약자인 자전거의 안전확보를 위해 차로의 오른쪽(보도쪽)에 자전거도로를 설치하고 있다.

차로가 좁은 일본의 경우, 인도에 보행자와 자전거가 함께 이용할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에 규정하면서도 보행자의 안전과 자전거의 특성유지를 위해 자전거는 보도중앙에서 차로측을 통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일본 도로교통법 제63조 4항)

이렇게 자전거가 차로 인정받는 교통선진국에서는 자전거의 교통수송 분담률이 매우 높다. 유럽의 네덜란드와 독일이 각각 46%와 26% 수준이고 일본도 25% 나 된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의 차이는 왜 생긴 걸까.

횡단보도가 없고 육교만 있는 교차로 지역에는 자전거통행권 확보를 위해 자전거횡단도로를 지정해 준다. (일본 오이타)

‘서울시 자전거 이용시설 정비 5개 년 계획’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제일교통연구원 강호익 원장은 “역사적으로 자전거 시대를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의 차이”라고 해석했다.

“100년 넘게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유럽은 원래있던 자전거도로에 자동차가 끼어든 경우다. 도로망은 자전거를 이용하기 좋도록 정비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자전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자동차 시대로 돌입했다.모든 도로는 자동차 중심이다. OECD국가 중 자동차에 방해된다며 고속도로에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강 총장은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나 기반이 전혀 없는 ‘자동차 천국’에서 ‘자전거 천국’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렵겠느냐고 설명했다.

강 총장은 “자동차 한 대 다닐 공간이면 자전거 14대가 다닐 수 있다”며 “자전거의 교통수송 효과는 매우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전거가 도심을 통행하는데 있어 안전을 확보하고 교통수단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차량과 동일한 흐름으로 진행하되, 차는 물론 보행자와도 분리된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교차로가 아닌 지역에서는 횡단보도에 인접하여 자전거횡단도로를 지정하고 뒤쪽에 차량정지선을 지정한다.(일본 오이타)

비록 인도위에 자전거도로를 개설하더라도 일본 처럼 차도쪽으로 일관성 있게 설치해 보행자와 자전거의 안전을 동시에 확보하고 보도턱을 낮추고 횡단보도가 없는 교차로에 자전거횡단도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자동차 다닐 공간도 모자라는 차로에 무슨 자전거도로를 설치하느냐”는 행정자치부 자전거 행정 담당자나 “자전거는 교통수단이라기 보다 한강변 같은 곳에서 타는 운동·놀이기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 아니냐”는 서울시 교통국 직원의 말에서 ‘자동차 천국’ 대한민국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서울시는 새문안길 등 도심에 개설 할 대부분의 자전거 도로는 인도 한 쪽에 선을 그어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