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폭로 문제' 여야가 한 배 탔나

  • 입력 2004년 8월 27일 11시 16분


인터넷상에 주요 정치인 가족의 친일행위 폭로가 이어지면서, 해당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정계는 최근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의혹들은 '루머'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같은 '개인 족보 뒤지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에 이례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같은 정치권의 공감대는 '인터넷 폭로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논점과는 별개로 '여야가 자신들의 첨예한 이해 관계에 대해선 어깨 동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의혹 섞인 눈초리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26일 김성완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盧대통령이 '과거사'를 언급한 이후 열린우리당 신기남 당의장과 이미경 상임중앙위원의 부친 친일 내역이 인터넷에 공개됐다"며 "그러나 이것은 천륜을 거스리는 것으로, 이유불문하고 중단돼야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부대변인은 "부메랑인지, 판을 크게 벌리기 위해 고의로 희생양을 삼은 건지는 모르겠다"며 그 배경에 대한 의구심을 여권(與圈)으로 돌리면서도, "그분들의 부친 행각을 이유로 신기남의장이나 이미경의원을 비난할 뜻은 추호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도 최근 동아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여당 인사들에 관한 의혹 글이 많은 것에 대해선 우리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인터넷식 연좌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경계한 바 있다.

'직접 피해자'인 여당도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네티즌들이 제기한 부친의 헌병 복무 사실에 대해 '울며 겨자먹기'로 시인했던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은 "친일진상규명은 법과 절차에 따라 아주 신중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게 바람직하다"며 "개인사에 대한 족보회귀식 방식으로 접근해선 친일진상규명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부영 의장 역시 "여당 사람들 문제만 자꾸 불거지는데 어디선가 이런 일을 밀고 나오는 곳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라며 "과거사 진상규명을 하려는 여당쪽 사람들에 대해 뭔가가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여야가 '간만에'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그들만의 공통된 이해 관계가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여(與)든 야(野)든 간에 '밝힐 건 정확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치권에선 이를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심마니'란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네티즌들은 '밥 먹고 할 짓이 없어' 그러는 게 아니다"라며 "그들의 포스트(게시물)는 다 증거가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동서남북으로 뛰어 자료를 구해서 준비해서 쓰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브레이크뉴스'란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논객 변희재 씨는 이부영 의장이 제기한 '친일 의혹 폭로 배후설'에 대해 "과거사 규명을 여권이 하면 '개혁'이고, 네티즌이 하면 '배후 조종'이란 말이냐"고 반박했다. 변 씨는 또 "이것이야말로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의 인터넷 인프라의 힘이고 네티즌들의 과거사 규명 의지의 표현"이라며 "여기에 무슨 배후가 있고, 정치권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네티즌들은 또 일부 언론의 '폭로 메카니즘' 보도에 대해서도 "요즘이 어떠한 시대인데 말장난을 치냐"며 "일간지의 '뒤늦은 결재'가 영향력을 갖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한 일간지는 "중앙 언론은 '알아도 당장 쓸 수 없는 사안'을 인터넷이 폭로하고, 시사 주간·월간지가 이 사실을 공식화하고, 중앙 언론이 이를 최종 보도한다"며 '폭로 메카니즘'을 정의한 바 있다.

이재준 기자 zz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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