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 칼럼]테러리스트와의 동침

  • 동아일보
  • 입력 2004년 9월 10일 18시 14분


체제경쟁은 끝난 줄 알았다. 누가 인공기 들고 나와 김정일 만세를 외친대도, 아직까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가겠지만 대부분은 저 사람 좀 돌았나 보다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의 체제는 그 정통성과 정당성에서 북한에 밀리는 분위기다. ‘시대를 거꾸로 살아오신 분들이 득세하고 그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냉소’해 온 과거사란다. 이런 역사가 계속되는 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되면 뭐하느냐고 했다.
그렇다면 시대를 제대로 살아오신 분들이 득세한 곳은 어디인지, 그런 역사가 계속돼 현재 1인당 소득 3만달러는커녕 1000달러 될까 말까한 북한을 말하는 건 아닌지 ‘거꾸로’ 묻고 싶어진다.
▼일방적 무장해제는 불안하다▼
국보법 폐지, 과거사 청산 문제로 남한이 분단된 상황이지만 이는 사안의 표면일 뿐이다. 법 자체가 문제라면 여야가 모든 걸 걸고 싸울 이유가 없다. 죽기 살기로 덤벼 온 체질을 잠시 접고 독소조항이 뭔지, 위헌소지는 없는지 법조문만 합리적으로 검토해서 풀면 된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현 집권세력이 대한민국을, 북한을 어떻게 보는가다. ‘거꾸로 역사’의 핵심사례로 꼽힌 반민특위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른바 친일파가 집권했다는 남한 단독정부가 나오고, 이를 가능케 한 미군정이 나타나며, 분단의 책임 문제가 등장한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386과 함께 1980년대를 풍미했다 고개 숙인 좌파적 수정주의 역사관의 부활이다. 시국을 걱정하는 이들이 현 정권의 정체성을 따져 물었던 것도 이 믿고 싶지 않은 역사인식이 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을 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세계의 눈에 비친 북한은 기이한 독재자가 지배하는 억압적 집단이다. 보통사람의 관점도 비슷하다. 북한 주민은 우리가 도와야 할 같은 민족으로 여기되, 자신은 호의호식하면서 제 백성 배곯리는 김정일 정권까지 지켜야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집권세력의 시각은 다르다. 중국 같은 경제개혁 개방을 기대하고 퍼 준 것들이 북한주민 아닌 김정일 철권통치와 핵개발에 쓰이는 사실을 여권이 모를 리 없다. 세계가 테러 또는 테러지원국으로 보는 정권을 한국 정부가 앞장서 지켜 주는 꼴이다. 그런 북한이 400여명의 탈북자를 받아들인 우리에게 극악한 테러범죄를 벌였다고 비난했다. 남북이 테러리스트가 되어 동거하는 기현상이 나타난 거다.
DJ정부가 돈 주고 성사시킨 6·15남북정상회담의 약속을 우리는 국보법만 남기고 대부분 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측은 변한 게 거의 없으니 일방적 무장해제다. 이젠 북한이 서해를 넘어와도 침략의사가 있는지 살피고 총을 쏘란다. 그렇다면 국군이 왜 필요한지, 이 정부가 국민과 국가를 지킬 의사는 있는 건지 궁금하다.
더욱 두려운 건 북한 카드가 정권의 이득을 위해 이용되는 현실이다. 과거 정권이 반공을 무기로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죄악을 저질렀다면, ‘새 역사’ 창조를 위해 국가 정체성을 흔들어 가며 북한 정권과의 동침을 꾀하는 것도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北처럼 되고 싶은가▼
결국 이 나라는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가는 상황이 됐다. 국보법 폐지, 과거사 청산 주장이 무서운 건 이 정권이, 설마 의도적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론 북한이 원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오랜 주장대로 이미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되고 있다. 북핵 문제도 동맹과의 협조 아닌 민족공조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을 수 있다. 하향평준화 전문에다 시장경제원칙을 무시하는 참여정부 특성상 경제 역시 북한과 나란히 되어 ‘우리식대로 사는’ 날이 올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는 소리가 당연히 나올 것이다. 그런 분들은 말없이 북한으로 가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어떻게 키워 온 나라인데 대한민국이 북한처럼 될 수는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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