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추석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이 날이면 오히려 가족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어머니”▽
포탈 사이트 다음의 추석 게시판에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는, 사별한 가족을 그리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엄마가 없는 추석이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서 차례 지내러 안 갔었다”는 혜진(borag)씨의 사연도 이 곳 게시판에 올라온 글.
그는 추석 때면 일부러 회사 근무를 자청하고 퇴근 후엔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 맥주 한 병을 사가지고 온다. 빈 집에 들어가 벽에 기대 앉아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보면, 나도 몰래 눈물이 난다.
얼마전엔 어머니를 속상하게만 했던 아버지도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는 “아버지 많이 원망스럽고 미워했는데, 사랑도 주지 못했는데, 그렇게 가버리더라”며 “나는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못난 딸이 돼 버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들, 며느리 다 잃어버리고 이제는 손주 밖에 없으신 고향 할아버지가 나보다 더 안됐다는 생각에 자꾸 마음에 밟힌다”면서 “제발 우리 할아버지만큼은 내가 효도 다 하구 나서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투정 부리고 싶어도 어디서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는 혜진씨. 올해는 추석 근무가 끝나면 할아버지 댁에 가서 꼭 제사에 참여하겠노라고 하늘나라 엄마와 약속했다.
▽기러기 아빠, 해외 유학생 이야기▽
다음 까페 ‘해외기러기 아빠엄마들의 모임’ 게시판에도 명절을 홀로 보내는 이들의 사연이 올라와 있다.
한 아버지는 “식구들 떠나고 처음 추석을 맞았을때 '민족 대이동’으로 도로마다 막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방송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찡하니 아프며 눈물이 나더라”고 토로했다.
그는 즐거운 명절이라고 TV나 언론에서 떠들 수록 더욱 괴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가까운 산이나 바다를 찾을 생각이라고.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다음 아이디 zisun은 “한국에서 추석 지내본지가 3년이나 됐다”며 “이번 추석은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날인데, 마음이 이상하다. 이런 때일수록 식구들 목소리가 너무도 그립다”고 말했다.
▽“형편 어려워 추석 잊고 산지 오래”▽
경기가 침체되다 보니 형편이 어려워 가족들과 추석을 보내지 못하는 딱한 사연도 있다.
아이디가 jungjin2018인 한 할머니는 포탈 사이트 추석 관련 게시판에 “옛날에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논밭 다 저당 잡히고도 명절이면 자식들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지금은 명절이 와도 걱정”이라면서 “희망도 없고 앞날이 막막하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큰 아들은 사업이 부도났고, 둘째는 실직한 뒤 이혼해 애들만 맡기고 연락이 없다”며 “경매다, 뭐다. 은행 연체이자를 갚지 못해 할배가 앓아 누운지도 3년이 다 돼간다. 영세민으로 손주들과 죽지 못해 살아 간다. 이 에미는 온식구 모여 보리밥에 된장만 먹고 살아도 원이 없겠는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노숙자 “이꼴로 어떻게 고향을…”▽
경기도 부천 노숙자 쉼터에 기거하는 김모씨(62). 서울역 지하도에서 신문지 한 장으로 쌀쌀한 밤공기를 피하는 노숙자들보다야 사정이 낫지만 고향에 찾아 갈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한다.
“집은 경상도야. 가족들이 보고 싶긴 한데, 이꼴로 어떻게 고향을 가겠어.”
공직생활 끝에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자 응하고 그때부터 집을 나와 떠돌기 시작했다는 김씨. 얼마전부터 마음을 추슬러 쉼터에서 소개시켜준 직장에 임시직으로 나가고 있는 그는 돈이 조금 더 모이면 아들, 딸을 만나러 갈 생각이라고.
다른 노숙자들은 여기저기 모여 앉아 강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고향에 안 내려가냐는 말에 “무슨 명절”이냐며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쓸쓸하게 돌아선다.
▽조선족 불법 체류자들▽
27일 오후 여의도에서는 조선족교회(대표 서경석 목사)와 KBS 주최로 재중동포한가위 잔치가 열렸다. 조선족 동포들은 모처럼 가리봉동 차이나타운 골목을 벗어나 노래자랑도 하고 사물놀이도 하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속엔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다. 고향을 떠난지 5년이 됐으나 한번도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다는 박모씨(40). 불법체류 신분이라 다시 들어올수 있을지 몰라 어쩔수 없었단다. 명절이 되니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반짝했던 경기도 이제는 사그라져 고향의 부모님이나 가족에 드릴 것이 전화 밖에는 없다. 그래도 내일은 해가 떠오를 것이라며 불법 체류의 걱정을 뒤로 하고 희망을 가져 본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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