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범죄자 만들어 놓고 배상은 못한다니…”

  • 입력 2005년 1월 7일 11시 54분


검찰의 강압수사에 의해 청소년 성매매 누명을 쓰고 기소됐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한 40대 회사원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것을 두고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국가가 죄 없는 한 시민을 성범죄자로 만들어 놓고도 배상을 못하겠다는 판결을 도저히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것.

서울고법 민사23부(부장판사 김경종)는 지난 5일 회사원 김 모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7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 면이 있지만 합리성을 ‘완전히’ 잃은 정도는 아니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김씨는 2001년 7월 황모양이 김씨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10만원을 받고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해 검찰에 기소됐다.

김씨는 검찰조사에서 “황양과 통화한 휴대전화는 명의만 내 것이고 아들이 사용한다”고 항변했지만 황양은 “이 아저씨와 분명히 원조교제를 했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황양의 친구가 황양의 전화를 빌려 친구인 김씨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고, 황양 또한 법정에서 “검찰이 윽박질러 거짓말을 했는데 말을 번복하면 아저씨(김씨)가 내게 손해배상 소송을 낼 거라고 겁을 줬다”고 증언해 김씨의 무죄가 밝혀졌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형사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이 확정됐다고 해서 검사의 구속이나 공소제기가 위법하다고 할 수 없고 경험이나 논리원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에만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번 사건을 좌시해선 안 된다”며 검찰과 법원을 싸잡아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다.

‘johnjunsw’는 네이버 관련기사에 쓴 댓글을 통해 “99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단 1명의 억울한 사람이 투옥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형사법의 기본 원리”라며 “그런데 그 기본원리를 무시하는 곳이 우리나라 검찰과 법원”이라고 꼬집었다.

‘nms364’는 “검사가 10대 소녀를 협박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위법행위를 했는데도 처벌을 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y2pe’는 “有錢無罪(유전무죄) 無錢有罪(무전유죄) 有權無罪(유권무죄) 無勸有罪(무권유죄) 가 우리나라의 최고 이상이요 도덕이며 양심이요 법철학”이라고 조소했다.

사법시험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글도 많았다.

엠파스 이용자 ‘lawnorder’는 “사회경험 없이 법전만 달달 외워 사시합격하면 벼락판사가 되니 희한한 판결이 나온다”며 “앞으로는 법조경험이 최소한 십년은 넘는 사람만 판사로 임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vergissmir’는 “판사나 검사나 사시기수 따져가며 호형호제하는 판에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편”이라고 비꼬았다.

한편 김 모 씨가 항고할 뜻을 밝힌 가운데 이 사건의 소송 대리인 홍승기 변호사는 7일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법원의 판결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2002년 판결문도 검사의 불법행위는 인정한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검사의 행위가 ‘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고문이나 잠을 안 재우고 밤샘수사를 한 것 등이 명확하게 밝혀진 경우)에만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호 받을 수 있는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는 “대법원이 아닌 사실심 법원에서 정책적 판단을 한 것 같다”며 “검사가 수사를 조금 잘못했다고 처벌해 위축되면 국가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고 배려를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한 법학자는 “검사의 행동이 위법, 부당했지만 동시에 이러한 검찰의 행위의 단초가 문제 여학생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며 “이러한 경우 현행법과 판례상 배상의 판단기준은 검찰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김 모 씨를 범죄인으로 몰아넣었는가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원은 경과실로 보고 배상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 같다”고 덧붙이고“만약 검찰수사관의 문제 여학생에 대한 협박을 검사가 알고 교사 또는 방조하였다면 국가는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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