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 칼럼]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05년 4월 8일 18시 37분


희한한 퀴즈프로도 다 있다. 실력만이 아니라 기회 포착과 감정 다스리기, 대의명분이 중요하다는 세상 사는 지혜를 보여 준다. 상업방송다운 별난 룰 때문이지만 이 또한 우리 사회의 반영이니 탓할 바는 못 된다. 대학생 8명이 출연해서 중간 중간 파트너를 바꿔가며 문제를 푸는 SBS TV ‘퀴즈쇼 최강남녀’ 얘기다.
이기려면 기회가 왔을 때 개인점수가 높은 출연자로 파트너를 갈아야 하는 게 이 프로의 상식이다. 지난달 최고점으로 우승 문턱에 섰던 한 여대생도 그랬다. 점수 나쁜 현재의 파트너 대신 최고점 남자만 모셔 오면 승리는 다 된 밥이었다. 그런데 묘한 분위기가 돌았다. 상금에 눈이 어두워 저 좋다는 남자를 배신할 여자인지 어디 보자는 기운이 느껴졌다.
똑똑한 여대생은 최고점 남자를 찍는 상식적 선택을 하면서 정직한 말을 하고 말았다. “제가 돈맛을 좀 봤거든요. 그래서….”
극적 상황이 그 다음에 벌어졌다. 막판 파트너 바꾸기 기회가 다른 여대생에게 떨어졌고 최고점 남자가 그쪽으로 옮겨가 역전승을 거둔 거다. 방청석에선 ‘정직이 통하지 않은’ 반전에 폭소와 박수를 터뜨렸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 여대생이 정직하지만 않았어도 망신은 피할 수 있었다. “저 분이 갑자기 멋있어 보였다” 식으로만 둘러댔어도 유쾌하게 끝날 상황이었다. 외교적 수사(修辭)는 외교관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었던 거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지만 그건 말 아닌 행동일 때 얘기다. 해로한 남편이 죽기 전 “사랑했던 여자가 있다”고 고백한다 치자. 본인이야 마음의 빚을 털고 편히 눈감겠으나 아내의 지옥 같은 여생은 어쩌란 말인가. 거짓말이 좋다는 게 아니다. 듣는 이의 감정을 다칠 말은 빼고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도 세상 사는 지혜다.
우리말로 둘 다 ‘정직’으로 번역되는 honesty와 integrity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honesty가 앞뒤 가리지 않는 거짓 없는 솔직함이라면, integrity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이에 따른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성찰을 포함한 믿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integrity 없는 honesty는 쉽다. 뇌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행동주의 경제학자 조지 로웬스타인 교수는 뇌의 대부분이 심사숙고보다 자동적 과정에 지배된다고 했다. honesty는 눈앞의 이익에 눈머는 감정적 뇌에 속하지만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는 integrity는 차원이 다르다. 논리적 사고와 교육,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했던 시절엔 어린 조지 워싱턴처럼 정직하게 자백하면 나무에 도끼질을 했어도 용서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상이 그때처럼 단순하지 않고, 성인의 경우 정직하다는 것만으로 면책될 순 없다는 데 있다.

▼교양이 중요한 이유▼
특히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외교에서의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 될 수 없다. 국가에는 개인과 다른 도덕적 의무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익을 지키는 것이지 도덕사회 구현이 아니며, 국익의 영순위는 국가안보다. 제 나라 방위도 못하는 능력이면서 “미국과 낯을 붉히더라도 할 말은 한다”는 건 망발이다. 말하는 사람이야 속도 시원해지고 지지도가 올라가겠지만 이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판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교육과 교양, 수양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와 가용자원을 명확히 인식해야 자신도 남도 불행에 빠뜨리지 않는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야지, 속없는 정직함으로 실리를 놓치는 건 하수(下手)나 할 일이다. 본인의 진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진의는 파악하는 게 번거롭고 각박하긴 해도, 산통을 깨는 것보다는 낫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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