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새 뒷전인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세계가 주시하는데 중국보다 먼저 일본의 역사왜곡을 따졌던 한국은 관심 밖이 됐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경제 규모 세계 6위, 구매력 세계 2위인 중국과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 일본이 맞붙었으니. 과거와 현재를 둘러싼 감정싸움을 벗어나 아시아의 패권(覇權)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양상이다. 분위기로 보면 중국의 판정승이다. 일본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가정보위원회는 2017년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과 같아진다고 했다. 아무리 일본이 ‘아시아판 영국’이 돼서 미국과 함께 세계 안보를 책임진대도 미국의 헤게모니 역시 예전 같지 않다는 판에, 중국에 잘못 보이려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싶다. ▼중국이 미국 된다고?▼ 21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될까. 아니라고 나는 본다. 중국은 아시아의 리더도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폭발적 경제성장 아래 묻힌 화약고 때문이다. 올 1분기에도 중국은 9.5%의 성장률을 올렸다. 과열경제를 진정시키겠다던 중국 정부의 공언과 정책이 안 먹힌 셈이다. 과잉투자, 투기자본, 달러화에 고정된 환율에 이 나라는 안전핀 없는 압력밥솥이 됐다. 은행들이 비효율적 공기업에 퍼줘서 안게 된 악성부채가 GDP의 40%다. 당장은 안 하겠다지만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위안화를 절상한다면 금융자본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다. 설령 경제거품이 꺼지지 않더라도 성장세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우리도 해봐서 알지만 산업화 초기까진 고속성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단계를 넘어서려면 부가가치 높은 지식, 경쟁력 있는 휴먼 캐피털이 필수다. 짝퉁 천국에다, 능력과 기술이 암만 뛰어나도 지방 관료와 유착하지 않으면 비즈니스를 못하는 환경에서 더 이상의 경제발전은 쉽지 않다. 이런 모순을 고칠 방책은 문외한도 안다. 금융제도 정비와 공기업 민영화, 정경유착 근절 같은 건 우리도 누차 들어 봤지만 정부가 맘먹고 개혁하면 못할 것도 없다. 그게 불가능에 가까운 건,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인데,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진정한 대국(大國)이 될 수 없고, 돼서도 곤란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대 배리 노튼 교수는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거의 모든 투자를 정부가 결정해 정치적 영향력과 뇌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나 장쩌민보다 더 근본주의적 공산주의자인 후진타오 주석이 정치개혁을 하겠는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껴안기는 했는데, 가장 나쁜 점끼리 시너지 효과를 내는 탓에 부패와 실업, 도농 간 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共産독재가 리더 돼서야▼ 2003년만 해도 하루 평균 160건의 시위가 일어났지만 반대파를 신속 가혹하게 억압하는 것으로 중국은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모양이다. 반일 데모도 강압적으로 막으면 이 불만이 공산당 정치권으로 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진 것 같다. 만일 경제가 삐끗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톈안먼(天安門) 사태처럼 폭발할지 모를 일이다.
아시아의 리더든 세계의 맹주든 어떤 꿈을 꾸느냐는 중국이 정할 일이되, 여전히 중화(中華)사상에 빠져 군사력까지 키우는 그 나라에 무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척지자는 건 아니다. ‘단호히 대처하고 재주껏 이용하라’는 덩샤오핑의 외교노선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중국 전래 병법을 배워 곧바로 중국에다 활용할 수 있다면 최선이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