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요. 담배 한 갑에 400원 싸요"

  • 입력 2005년 6월 4일 16시 26분


"뭐 담배 값이 또 오른다고. 이거 어디 담배를 끊던지 해야지. 싸게 살 방법은 없나"

정부가 지난해 말 500원 올린 담뱃값을 7월에 추가로 500원 인상한다는 소식에 애연가들이 늘어놓는 푸념이다.

이들은 '금연'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솔깃한 정보는 저렴한 담배 구입법이다.

지난 1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길.

한 40대 여인이 좌판을 차리고 검정색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놓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갑작스럽게 차려진 좌판에는 원(The One), 에세(Esse) 등 국산담배를 비롯해 양담배와 중국산담배까지 다 있다.

그 여인은 “오늘부터 한 갑에 100원씩 올랐습니다”라고 말한 뒤 담배를 팔기 시작했다. 국산담배는 좌판이 차려진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시중에서 2500원에 팔리는 ‘원’과 ‘에세’가 2100원에 거래됐다. 싼값에 담배를 구입한 애연가들은 모두들 흐뭇한 표정이다.

기자가 “어떻게 해서 담배를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느냐. 담배를 어디서 가져오느냐”고 묻자, 그 여인은 “왜 묻느냐. 다 갖다 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리를 떠버렸다.

정상가보다 낮은 값으로 애연가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불법담배는 서울시 종로 탑골공원을 비롯해 서울역과 주요 지하철역 주변 등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렇게 판매되는 담배는 올해 초에는 정상가 보다 보통 30%가량 저렴했지만 최근 정부의 가격 인상 소식에 할인 폭이 10~20%선까지 줄었다.

특히 전문 브로커에 의한 면세담배 유통과 가짜 담배 밀수도 늘고 있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방침에 값싼 담배를 찾는 애연가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

길에서 담배 10갑을 한꺼번에 구입한 이호진(45·광진구) 씨는 “한 갑에 400원이 싼데 하루에 한 갑씩 핀다고 계산하면 열흘에 4000원 꼴”이라며 “올해 초 담뱃값이 오르고 나서는 이런 담배를 여러 차례 구입했다”고 말했다.

귀금속 전문점이 몰려있는 종로3가 거리에는 안경 모자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다. 그들의 좌판 한 귀퉁이에는 국산담배가 한두 갑씩 진열돼 있다.

기자가 “‘원’ 열 갑에 얼마냐”고 상인에게 묻자, “한 갑에 2100원인데 열 갑이면 20000원만 주세요”라며 가판대 밑에서 면세용(Duty Free)이라고 인쇄된 담배 10갑을 꺼내 쑥 내민다.

이 상인은 “올해 초에는 1800원에도 팔았는데 요즘은 담배도 잘 안 나오고 가격도 올랐다”며 “많이 사려면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라”고 귀띔했다.

그는 “종로 일대에서 유통되는 담배는 면세용이 많다”며 “중국에서 오는 것도 있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것도 있는데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 담배를 가져온다. 가짜 담배는 아니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근처에서 20년째 상점을 운영하는 김수민(55·가명) 씨는 “올해 초만 해도 담배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에 단속이 자주 뜨면서 사람들이 줄었다”면서 “그래도 맘만 먹으면 싼 담배를 얼마든지 구입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5월말 현재까지 관세청에 적발된 밀수담배는 300여만 갑 60억원에 이른다.

이와는 별도로 담배도난 사건이 급증하면서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2002년 880건에서 03년 1327건, 04년에는 1483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올해는 4월까지 591건이나 발생했다. 경찰은 도난담배가 시중에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관계자는 “담배 값 인상 후 불법담배 유통이 심각하다”며 “불법담배 판매행위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역시 중앙회와 공조해 불법담배 유통단속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구민회 동아닷컴 기자 dan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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