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관리본부는 지난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헌혈자가 감소하면서 재고량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며 헌혈에 참여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 글을 본 헌혈자들은 “우리는 헌혈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며 “‘헌혈의 집’ 운영이나 똑바로 하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은 △‘헌혈의 집’ 운영시간을 늘리고 △근무자들의 불친절한 태도를 바꾸며 △지방 도시의 부족한 헌혈시설을 개선하라고 지적했다.
▲ 학생과 직장인은 하지 말라는 것인가
현재 헌혈의 집은 주 5일제를 도입, 주말에는 일부만 운영된다.
평일 운영시간도 주요 헌혈자인 직장인과 학생들이 나올 수 없는 오전 9시~오후 6시 이며, 유일하게 현혈을 할 수 있는 낮 12시~오후 1시에도 자신들의 점심을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곳이 많다.
경북 안동시 고교 2년생인 권기웅 군은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마치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6시”라며 “학교 끝난 뒤 헌혈하려고 ‘100미터 달리기’라도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직장인 최윤경 씨도 “헌혈 한번에 30~40분은 족히 걸리는데 점심시간에 쉬고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헌혈의 집에 어떻게 직장인들이 갈 수 있겠냐”며 “적십자사는 피가 모자란다고 우는 소리만 하지 말고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 자원봉사자들의 불쾌한 태도에 마음 바뀌어
적십자의 헌혈회원이라는 권상수 씨는 “자원봉사자들이 터미널과 역 부근에서 헌혈을 하고 가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는데 ‘저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지 손을 잡아끈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직장인 심소영 씨는 “헌혈의 집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누가 헌혈할건데?’ ‘지원서 작성해’ 등 탁탁 반말을 내뱉고, 대기시간을 묻는 질문에도 ‘한 15분, 20분? 이 시간에 원래 많아. 몰랐어? 기다리기 싫으면 피해서 오든지’라고 답해 기분이 상해서 그냥 돌아왔다”고 자원봉사자들의 불친절을 성토했다.
윤대훈 씨도 “헌혈의 집에 가면 담당자들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구걸하러 간 기분이 들 때가 있다”며 “친절교육부터 시켜라”고 말했다.
▲ 부족한 헌혈의 집, 열악한 시설
헌혈자들은 또 지방 도시의 헌혈의 집이 턱없이 부족하고 시설도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서보관(경북 구미시) 씨는 “사람이 밀려 헌혈하는데 무려 4시간이 걸렸지만 대기 좌석은 4개 뿐 이었다”며 “다시는 헌혈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진우 씨도 “헌혈의 집이 포항에는 1곳, 경주에는 1곳도 없다”며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 국민들의 부족한 봉사정신을 탓하기 보다는 먼저 충분한 여건 마련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국내 최다 헌혈(455회) 기록자 손홍식(55) 씨는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의 시민들은 헌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며 “지방에도 헌혈을 위한 장소를 따로 마련하는 법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혈액관리본부 홍보팀 박형준 씨는 “혈액사업은 국가사업이지만 헌혈의 집은 일반 점포와 똑같이 임대료와 보증금, 월세 등을 내야 한다. 공공단체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혈액 자원봉사자 분들이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가끔 헌혈자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야간과 주말에 상시적으로 헌혈의 집을 열기가 힘들다”고 해명했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헌혈자 숫자는 2003년 253만5343명에서 2004년 232만5108명으로 감소했다. 올해도 5월 현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가 감소한 92만1480명으로 집계됐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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