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상대의 어떤 공격도 단숨에 무력화(無力化)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상대방이 아무리 고고하거나 막강한 거대권력이라도 상관없다. 배신과 복수를 다룬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깨달은 방법이다. 방금 죄수복을 벗은 예쁜 여주인공 금자 씨. 죄짓지 말고 살라며 두부를 내미는 전도사에게 얼음장같이 내뱉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너나 잘하세요.” 자기는 깨끗한 척 남을 돕는다지만 도청이라도 해봐라. 위선과 이기적 동기가 안 드러나나. 듣는 쪽에선 움찔할 수밖에 없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나, 죄 없는 자만 저 여인을 돌로 치라는 말 앞에 당당할 사람 얼마나 되나 말이다. 이 냉소적 대사가 지금 시대정신처럼 터져 나온다. 동료의 충고에 되붙이는 “너나 잘하세요”는 농담으로 볼 수도 있다. 여론조사에 관해 청와대가 문제 제기할 자격 없다고 전한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의 제목은 ‘조·동에 딴지 건 청와대, 너나 잘해’였다. 안기부 X파일의 등장인물들은 물론, 기획 연출자들도 당신들은 잘했느냐며 사방에 눈을 부라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극복하자며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해도 마찬가지다. “한가하게 연정 꼼수를 검토해 볼 시간이 없다”(한나라당) “국민들이 지쳐 있으니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에 정성을 쏟아라”(민주당)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당하라”(민노당)는 반응을 한마디로 하면 ‘대통령님이나 잘하세요’이다. 만일 청와대에서 “고민 끝에 얘기한 것도 정치권 등이 냉소적으로 반응한다”고 한 비판을 반복하려거든,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도’ 냉소적이라고 덧붙여 주기 바란다. 2003년 말 대통령이 측근비리 의혹과 관련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 “선거자금 중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가 넘으면 대통령 직을 사퇴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X파일로도 복잡한데 연정이라니, 또 시작인가 보다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핵심은 신뢰 상실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하는 말도 믿기 힘든데 어느 정치인을 신뢰할 수 있는지 국민도 답답하다. 정치판에서는 거꾸로 언론이 부정적 정치보도로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긴다며 ‘너나 잘하세요’ 공격할지 모른다. ‘언론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 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새 신문법에 어긋날까 겁난다. 다행히도 냉소주의가 우리만의 유행은 아닌 것 같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20년 전 ‘시대는 온통 냉소적이 됐다’는 주장이 독일에서 나왔다.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사람들은 아는 게 너무나 많아진 세상에 산다. 알아야 할 뉴스를 전하는 것은 냉소적 보도가 아닌 리얼한 보도라 함직하다. 유토피아적 이상이 파국의 가능성으로 폭로되고, 새롭게 나온 가치도 결국 단명하리라는 걸 알게 됐는데 어떻게 냉소적이지 않겠느냐는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지적은 오늘 우리에게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어떤 것도 믿지 않으려는 냉소주의를 건강한 회의주의로 바꾸려면 고고한 쪽에서, 거대권력을 가진 쪽에서 먼저 믿음이 가도록 하고 또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쿨’을 넘어 냉소주의로 무장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원하는 이들이 냉소주의자다. 열정과 분노로 들끓던 때가 외려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