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동네 학교는 돈 많아 공부도 잘 시키는데 가난한 동네 학교에선 돈 없어 가르칠 것도 못 가르친다―우리만의 고민이 아닌 모양이다. 21년 전, 미국 텍사스 주에서 저소득층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나온 제도가 일명 ‘로빈 후드 플랜’이다. 1993년부터 적용된 학교재정시스템은 간단하고도 정의롭다. 부자 동네에서 더 걷힌 재산세를 가난한 동네 학교에 나눠 주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시행 10년도 안 된 2001년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 할 것 없이 300개가 넘는 학군에서 재정지원금이 모자란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지금 텍사스는 로빈 후드를 어떻게 변신시키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 중이다. 세금은 늘었는데 학교는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민들도 아우성친다. 의도도 좋고 계산상으로도 훌륭한데 왜 이 모양이 됐을까. 하버드대의 두 경제학자 캐롤라인 혹스비와 일리아나 쿠지엠코 교수가 지난해 ‘예견된 파국이었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목적만 중시되고 경제적 요인은 무시됐기 때문이다. 로빈 후드가 등장하면서 부자 동네 집값이 떨어졌다. 그 동네 집이 비싼 건 학군이 좋아서인데 세금 많이 내봤자 자기 아이 학교로 안 돌아가니 좋은 동네에 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집값이 연쇄 추락하자 세수(稅收)가 줄고 학교로 가는 돈도 줄었다.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텍사스 학생 한 명이 로빈 후드가 없었다면 받았을 지원금 2만7000달러씩을 잃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교육의 질도 그만큼 떨어졌다. 로빈 후드는 의적(義賊)이 아니었다. 미국의 로빈 후드 파동을 남의 일로 볼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 않다. 지금 열린우리당에선 서울 부자 구청의 재산세를 다른 구청의 학교에 나눠 주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내놓겠다는 부동산 대책도 다르지 않다. 강남 사는 사람만 때려잡는 ‘스마트탄(彈)’이 될 거라지만, ‘있는 사람’ 털어 ‘없는 사람’을 줘야 한다는 로빈 후드식 발상은 문제가 있다. 가진 자 ‘삥’ 뜯어서 갈라 먹자는 조직폭력배 심보여서가 아니다. 조폭들도 계속 뜯어갈 작정이면 먹고살 건 남겨 둬 준다. 소수에게 왕창 세금을 뜯어 공공 재원을 마련하는 로빈 후드 정치경제학은 결국 모두를 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텍사스가 보여 주고 있다. 어설픈 분배정책으론 정부가 낭비하는 돈만 많아진다는 ‘오쿤의 항아리’ 법칙도 건재하다. 특히나 ‘부동산세 중과(重課)로 이득 보는 계층’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의도는 간특하고도 유치하다. 국가 경영을 맡았으면 전체 부(富)를 늘려 국민들 잘살게 하는 게 정상이다. 이건 현재 세금 적게 내는 사람들은 대대손손 좁고 낡은 집에서 살라는 악담이나 다름없다. 배 아픈 건 마사지해 줄 테니 배고픈 건 참으라는 말씀인가. 진짜 부자들은 다양한 재테크 세(稅)테크 세계화로 빠져나가고 어중간한 월급쟁이들만 허리 끊어질 판인데도? 이렇게 되면 ‘양극화 해소’는 참여정부의 가장 큰 성공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부자와 중산층이 망하면 양극화 해소는 시간문제다. 그래도 반갑지 않은 건, 좀 더 잘살고 싶다는 인간의 당연한 욕구가 죄악시되는 나라에 산다는 현실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잘살게 돼 봤자 욕이나 먹고 징벌적 세금이나 두들겨 맞는다면 이 나라에 희망을 갖고 살 이유가 없다. 아무리 정의로운 정부를 자처한대도 지금 우리에겐 어제보다는 잘살게 해 주는 정부가 필요하다. 그럴 의사도 없고, 대통령실 화장실 비데를 500만 원씩 주고 살 만큼 나랏돈을 엉뚱하게 쓰는 능력이면서 세금만 죽어라 쥐어짠다면 ‘조폭 정부’다. 부동산 잡겠다고 하늘까지 두 쪽 낼 작정은 접기 바란다. 참여정부는 2년 반 후 물러날지 모르지만 하늘은 우리 국민이 천년만년 이고 살아야 할 공공재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