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사회모델이 샴페인이라면 영국식 모델은 맥주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유럽의 경제와 사회복지 틀을 술에 비유한 말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선 실직해도 겁나지 않게 실업수당이 나온다. 쉽게 해고되지도 않는다. 샴페인처럼 기분을 들뜨게 하지만 사치스럽다. 홀짝거리다간 망한다. 지금도 실업률이 높아 난리다. 반면 영국과 아일랜드는 실업수당에 관대하지 않다. 해고도 쉽지만 고용도 쉽다. 별로 우아하지 못하고 때로는 씁쓸하되, 실용적이다. 그래서 맥주다. 우리나라 사회모델은 폭탄주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이중적이다. 맥주잔 속에 형편에 따라 양주나 소주 ‘알 잔’이 들어간다. 노동시장도 이원화돼 있다. 정규직은 해고도 어렵고 고용도 어렵다. 이 때문에 되레 비정규직이 늘고 젊은층 취업도 바늘구멍이다. 둘째, 폭탄주는 술 약한 사람은 입에 대기 힘들다. 그만큼 복지 사각지대가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은 실업자 넷 중 한 명만 실업수당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셋째, 제조자의 자의성(恣意性)이 심하게 개입되는 게 폭탄주다. 정부는 여기저기 개입해 노조의 투쟁력만 키웠지 일자리도, 사회적 안전망도 제대로 늘리지 못했다.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이 남의 일처럼 걱정한 ‘개인의 위험에 대한 보장도 없으면서 성장도 안 되는 사회’가 바로 우리나라다. 유럽도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어떤 사회모델을 택할지 고민 중이다. 9월 초 유럽연합(EU) 회원국 경제·재무장관 모임에서 벨기에의 앙드레 사피르 교수는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새로운 북유럽모델을 최선으로 꼽았다. 시장경쟁과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과 평등을 함께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이원덕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에 대해 쓴 걸 보면 정부도 이쪽에 끌리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개혁 전의 옛 모델이든 새 모델이든, 우리나라가 북유럽식을 따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스웨덴에선 나라가 백성을 챙겨 주고 백성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전통이다. 루터교의 영향으로 평등과 박애정신이 내면화돼 있다. 사람들은 듣기를 더 좋아하고, 팀워크를 이끌어 내는 리더를 최고로 친다. 대화와 타협은 이들에게 당연하고도 정상적이다. 술로 치면 밥 먹기 전에 속을 덥히면서 기운도 돋우는 식전(食前)증류주 아쿠아비트에 비유된다. 어디 우리 체질에 맞겠는가. 더구나 지금 스웨덴에 복지천국 ‘스웨덴모델’은 없다. 스웨덴 룬드대 경제사 교수인 모리시오 로야스는 5월에 낸 ‘스웨덴모델 이후의 스웨덴’이란 논문에서 스웨덴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옛 사회모델을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1980년대부터 정보화 세계화 고령화 추세로 실업과 경제난이 극심해지면서 돈 많이 드는 복지제도를 지탱할 수 없어서다. 1991년 집권한 스웨덴 우파정부는 세금과 복지혜택을 축소했다. 해고를 쉽게 한 대신 완전고용정책에 힘썼다. 사립학교나 병원, 사적(私的)연금 등을 선택할 자유를 줬더니 공공부문 경쟁력까지 올라갔다. 북유럽모델이 효율성과 평등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도 이런 개혁 덕분이다. 이 같은 ‘탈바꿈’을 외면한 채 노 대통령은 “스웨덴은 1936년 전(‘1938년’의 잘못)에 짤쯔요바덴(‘살트셰바덴’의 잘못) 협정이라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효율성을 가진 국가로 운영해 오고 있다”(이원덕 수석의 글)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경제가 안 되는 나라가 스웨덴모델을 따라하려는 건 헛된 꿈이라고 로야스 교수는 강조했다. 정 따르고 싶다면 ‘해고를 쉽게 하면 고맙게도 실업률이 떨어지는’ 노동시장 유연성의 역설을 배워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 신작로에서 중요한 걸잃어버리고 뒷골목 전봇대 밑에서 찾는 모습은 이제 신물이 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