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단역 배우의 아들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의 글이 인터넷에서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아버지를 위해 누리꾼들에게 아버지의 팬이 되어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
글을 쓴 주인공은 한재성(27)씨.
MBC 인기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 3’에 출연 중인 개그맨 한상진(45) 씨가 그의 아버지다.
아버지 한 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총 5회에 걸쳐 경찰, 의사, 손님 등의 단역으로 출연했다.
재성씨는 지난 11일 ‘j9935077’란 ID로 한 대형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아버지께 생신기념으로 ‘팬’을 선물하고 싶은데 여러분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며 “잠시 시간을 내서 저를 도와 달라”는 간절한 호소 글을 올렸다.
아들이 생각한 선물 ‘팬’은 개그맨 한상진 씨를 알아보는 팬들의 글이 담긴 ‘미니홈피’.
재성씨는 “아버지는 한번도 ‘팬’을 가져보지 못했다”며 “다가오는 생신에 아버지를 알아보시는 분들의 방명록이 담긴 개인홈페이지를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성씨는 아버지의 개그맨을 향한 끝없는 열정을 소개했다.
아버지 한씨의 도전은 1980년 생계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에 다녀온 후 시작됐다.
어렸을 적부터 끼가 넘쳤던 그는 각종 개그맨 시험에 응시 했지만 수차례 낙방했고, 1991년 KBS 공채 8기로 어렵게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인이 선 빚보증이 잘못돼 온 가족이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한씨는 개그맨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미국에 가족을 두고 홀로 한국에 돌아와서 방송을 재개하지만 빚쟁이들의 탄원서로 방송국에서 쫓겨난다.
한씨는 그 후 각종 행사를 전전하며 약 2억원 가량의 빚을 홀로 갚아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식당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부인이 트럭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당했다.
재성씨는 이 같은 사연을 소개한 뒤 “아버지는 그동안 해외 공연과 교도소, 사회복지시설 등에 공연을 다니시며 많은 감사패와 표창을 받으셨다”며 “최근 출연하게 된 TV시트콤은 아버지께는 엄청난 행운이자 기회이다. 비록 단역 이긴 하지만 항상 열심히 연습하셔서 촬영에 임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명록이 담긴 미니홈피의 목표는 100명의 방문객이다. 어렵겠지만 아버지처럼 그렇게 도전해 보려고 한다”고 누리꾼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성씨의 우려와는 달리 한 씨의 홈페이지에는 12일 현재 1만5058명이 방문, 방명록에는 무려 3000여개의 팬레터가 실렸다.
▲ 개그맨 한상진 씨의 아들 한재성 씨가 개설한 홈페이지 첫화면. 12일 오후 현재 누리꾼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모으며 무려 3000 여개의 축하메시지가 올라왔다. |
누리꾼들은 “어렴풋이 방송에서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생신 축하드리고 좋은 연기 부탁드립니다”, “TV에서 봤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멋진 아드님을 두셔서 부럽습니다”, “오랜만에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생일 선물을 받으셨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일은 다 잊으시고 앞으로 더욱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며 한 씨를 응원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아버지 한상진씨는 12일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갑작스레 쏟아진 관심에 얼떨떨하다”며 “좀 전에 우리 애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큰 화제를 몰고 올줄은 예상 못했고, 그냥 아버지께 깜짝 생신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고만 하더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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