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친절한 금자씨’의 히로인 이영애(33) 씨는 쪽진 머리에 단아한 한복을 입고 레드카펫 위에 걸어 언론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빨간 저고리와 어울린 짙은 밤색 치마는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69) 씨가 특별 제작한 것이다.
하늘하늘 거려 해외에서 ‘바람의 옷’이라는 애칭을 얻은 ‘한복’. 최근 한류 열풍으로 안방 사극이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한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한복이 정작 국내에선 외면 받고 있어, 대책을 만들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복전문가들은 가까운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가 자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것에 비해선 우리의 한복사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한탄한다. 혼수품을 사러 오는 새신랑 새신부가 아니면 좀처럼 한복을 해 입지 않는 것이 우리의 풍토가 돼 버렸다는 것.
명절이 되도 한복을 안 입긴 마찬가지. 설 명절을 앞둔 지난 25일 서울 동대문종합상가 한복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혼수철이 아니면 비수기라는 상인들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 한복점 사장은 “설 명절이지만 하도 안 팔려 1벌 당 20~25%씩 할인해 주고 있다. 설빔이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라고 푸념했다.
▲ “국내선 한복집 폐업, 해외선 한복패션 유행” ▲
최근 불경기까지 겹쳐 전통 한복집들이 밀집한 서울 광장시장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늘고 있다. 몇 년 반짝 특수를 누리던 서울 강남의 청담동 한복거리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복이 예전처럼 값비싼 옷은 아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한복 원가가 공개되면서 가격 거품이 꺼졌다. 전문 상가에서 ‘연화견’을 비롯한 최고급 원단의 한복은 갖가지 소품을 갖추어 한 벌에 40만원을 넘지 않는다. 아이들 옷도 4~6만원이면 산다.
직장인 조지현(32) 씨는 “한복을 한번 입으면 비싼 드라이크리닝 세탁을 맡겨야 하고, 몸가짐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아름답긴 하지만 그에 따르는 희생이 너무 커 이번 설에도 장롱 속에 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외국인들에게는 꾸준한 관심을 얻고 있어 대조된다.
주단점 ‘각시방’ 관계자는 “1주일에 한두 명의 외국인이 찾아와 전통한복을 사간다”며 “인터넷을 통해서도 꾸준히 국외 주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광정보센터는 지난해부터 한복을 몇 점씩 구비해 놔 아예 외국인들에게 대여해 주고 사진을 찍게 해준다.
드라마 ‘대장금’의 열풍이 몰아치는 중국과 대만에는 현지 인기 연예인들이 한복을 입고 방송에 나오기도 한다. 대만 정치인들은 의녀 장금이의 복장을 하고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2004년 미국 뉴욕에 들어선 ‘한복 박물관’의 경우 전 세계의 패션전공 교수와 학생들의 견학이 줄을 잇고 있다.
▲ “엄마가 입혀준 알록달록 한복의 추억 줘라” ▲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씨는 “한복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기모노는 더 불편하다”며 “어릴 적부터 한복 입는 습관이 몸에 배이지 않아 점점 멀리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어머니들이 앞장서서 한복 입은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아이들 생일과 학교 행사 때마다 한복을 입혀줘야 한다”며 “어렸을 적 엄마가 입혀준 알록달록 한복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커서도 쉽게 한복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이영희 씨는 앞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복 입히기 강의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한복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고귀한 예술품”이라며 “우리 옷보다 더 좋은 옷은 없다. 이 점에 대해 우리가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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